박지성, 고장난 무릎으로 누구보다 많이 뛴 진정한 영웅

  • 등록 2014-05-14 오후 2:58:21

    수정 2014-05-14 오후 2:59:33

박지성(33·PSV에인트호벤)이 14일 오전 경기 수원시 박지성축구센터에서 현역 은퇴 및 향후 거취 관련 기자회견을 마친 뒤 연단을 나서고 있다. 사진=뉴시스
[수원=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한국 축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 박지성(33·PSV에인트호번)이 누구보다 화려했던 축구 인생에 공식적으로 마침표를 찍었다.

박지성은 1990년 세류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축구를 시작한 뒤 안용중-수원공고-명지대를 거쳐 교토상가(일본)-에인트호번(네덜란드)-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퀸즈파크 레인저스(QPR·잉글랜드)-에인트호번에서 25년간 선수생활을 했다.

박지성이 걸어온 길은 곧 한국 축구의 역사가 됐다. 2002년 한·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는 등 한국 축구가 4강 신화를 이루는데 일등공신이 됐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진출한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유럽무대 적응을 마친 박지성은 2005년 최고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한국인 최초의 프리미어리거’로 우뚝 섰다. 맨유에서 7년 동안 207경기를 뛰며 29골 22도움을 기록했다. 정규 리그 우승 4번,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번, 리그컵 우승 3번을 함께 하며 맨유의 중심에 우둑 섰다.

‘국가대표’ 박지성의 존재감도 탁월했다. 2000년 4월5일 레바논과의 아시안컵 예선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박지성은 2011년 1월 25일 일본과의 아시안컵 준결승전까지 100경기에서 13골을 기록하고 나서 후배들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선 주장 완장을 차고 조용한 리더십으로 팀을 훌륭히 이끌어 ‘영원한 캡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에게도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수원공고 졸업 당시 박지성은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그에게 관심을 보내는 대학이 없었다. 체격이 왜소한데다 축구선수로선 치명적 약점인 평발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수원공고 이학종 감독의 간곡한 추천으로 1999년 명지대에 겨우 진학했다.

그가 주목받은 것도 우연의 일치였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을 앞두고 올림픽대표팀의 스파링파트너로 나섰다. 그 연습경기에서 오히려 대표 선수들을 압도하는 기량을 뽐내며 허정무 당시 감독의 눈에 들었다.

처음 에인트호번에 입단했을 당시에는 홈팬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유럽 무대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팬들에게 전혀 신뢰를 주지 못했다. 맨유에서도 데뷔 초반에는 ‘유니폼 판매원’이라는 반갑지 않은 별명을 얻었다. ‘동양인 선수는 성공할 수 없다’는 편견은 가장 큰 적이었다.

하지만 박지성은 시련과 편견을 당당히 실력으로 이겨냈다. 현란한 테크닉과 운동능력은 없지만 특유의 성실성과 강한 체력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자연스레 야유는 환호로 바뀌었다.

사실 박지성을 가장 괴롭힌 적은 박지성 안에 있었다. 바로 고질적인 무릎부상이었다. 박지성은 2002년 한일월드컵을 마치고 나서 무릎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후 박지성과 무릎 통증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두 번이나 수술대에 올랐지만 부상을 완전히 떨쳐내지 못했다. 오히려 시즌을 거듭할 수록 상태는 더욱 악화됐다. 한 번 경기를 치르고 나면 훈련을 커녕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 조차 힘들 정도였다. 비행기만 타면 무릎에 물이 차는 일은 예사로 반복됐다.

하지만 박지성은 철저한 자기 관리와 팀에 대한 책임감으로 묵묵히 그라운드를 누볐다. 고장난 무릎으로 누구보다 많이 뛰었고, 상대 선수와 부딪혀 넘어졌고, 골을 만들어냈다.

박지성이라는 존재는 한국 축구에게 있어 큰 선물이었다. 아쉽지만 이제 그를 떠나보내야 할 때다. 그가 만들어준 최고의 순간들을 추억하며 새롭게 펼칠 ‘제2의 축구인생’에 행운이 따르길 기원해본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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