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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속여제’ 이상화(30)가 누구보다 화려했던 선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상화는 16일 서울시 중구 소공동 더 플라자 호텔 루비홀에서 열린 은퇴 기자회견에서 은퇴를 결심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은퇴 소감을 밝히면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과 눈물 때문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이상화는 “평창동계올림픽 후 선수 생활을 이어가려 했다. 하지만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몸 상태가 돌아오지 않았다”며 “팬들이 좋은 모습으로 기억해줄 때 선수 생활을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은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평창올림픽 전이 가장 힘들었다. 메달을 못 따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항상 떠나지 않았다”며 “이런 부담 때문에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최근까지도 운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알람을 늘 켜놓고 잤다. 이제는 알람을 끄고 편하게 자고 싶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상화의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원래 3월에 은퇴식을 예정했는데 미뤄진 이유가 있나.
△3월말 은퇴식이 잡혀있었는데 막상 은퇴식을 치르려고 하니까 너무 아쉬웠고 미련이 남았다. 좀 더 해보자는 마음으로 재활을 병행했다. 하지만 내 몸상태는 나만이 알고 있는데 예전 수준으로 올리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지금 은퇴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은퇴 후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스케이트만 하면서 달려왔다. 지금은 다 내려놓고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싶다. 경쟁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소치 올림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은 세계신기록을 세우면 올림픽 금메달을 못딴다는 징크스가 있다 그 징크스가 두려웠는데 결국 소치에서 올림픽 2연패를 했다. 깔끔한 레이스였고 가장 기억이 남는다.
-올림픽에서 2개의 금메달과 1개의 은메달을 따냈다. 각각의 의미를 부여한다면.
△2010년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은 예상하지마 못한. 깜짝 금메달이었다. 2014년 소치 올림픽은 세계신기록을 세운 뒤 계속해서 좋은 성적으로 2연패를 했다는 점에서 내 자신에게 엄청난 칭찬을 해주고 싶다. 이미 2연패 부담을 이겨냈기 때문에 평창에서 3연패 타이틀 부담도 이겨내려고 했는데 쉽지 않았다. 부상이 4년 전보다 더 컸고 우리나라에서 열린 대회였기 때문에 긴장감도 더했다. 그래도 은메달도 값진 결과였다. 은메달도 이쁘더라.(웃음)
-라이벌이었단 고다이라 나오와 은퇴 관련해서 얘기를 주고받은 것이 있나.
-부모님께 어떻게 은퇴 사실을 말씀드렸나.
△부모님은 계속 운동하는 것을 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최근까지 은퇴식을 연다는 것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나만큼 섭섭해 하실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어머니가 ‘잘 하고 와라’고 말해줬는데 서운함이 담겨있는 것 같았다. 나도 서운한데 부모님은 얼마나 더 서운하시겠나. 매년 겨울이 되면 내 경기를 보러 오셨다. 이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됐는데 달래드려야 할 것 같다.
-앞으로 지도자로서 계획은 있나.
△원래 은퇴를 고민하지 않았다. 갑자기 은퇴를 결정하다보니 아직 미래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목표를 차근차근 세우겠다. 은퇴하면서 스피드스케이팅이 비인기 종목으로 사라지는게 너무 아쉽다. 후배들을 위해 지도자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상황과 생각이 정리된 이후 결정하겠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함께 금메달을 땄던 이승훈, 모태범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모태범은 빙상계를 떠나 다른 종목을 하고 있다. 가끔 연락하는데 함께 운동했을 때가 재밌었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두 선수 모두 아직 현역 운동선수인데 자기가 맡은 것을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어떤 선수로 기억되길 바라나.
△평창올림픽이 끝난 뒤에도 같은 질문을 받았다. 살아있는 전설로 남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 답변은 변함이 없다. 안되는 것을 되게 하는 선수, 항상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해주면 좋겠다.
-201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때는 무엇을 하고 싶나.
△아직 잘 모르겠지만 해설위원이나 코치로 참가하고 싶다.
-기억 남는 라이벌이 있나.
△나오와 경쟁하기 전에 중국 선수(장훙)와 경쟁했다. 당시 한중전이라는 경쟁 구도가 있었다. 결국 내가 시즌 마지막 대회인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한중전과 함께 나오와 경쟁한 (평창올림픽) 한일전이 기억에 남는다.
△소치 올림픽과 평창 올림픽에서 도움을 준 케빈 크로켓 코치가 기억에 남는다. 시간이 된다면 캐나다에 가서 감사 인사하고 싶다.
- 세계신기록 안 깨지고 있다. 언제까지 세계기록이 안 깨졌으면 좋겠나.
△영원히 안 깨졌으면 좋겠다. (웃음)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많이 올라왔고 36초대 진입이 쉬워진 것 같다. 한 1년 정도만 유지됐으면 좋겠다.
-선수로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무엇인가.
△마인드 컨트롤이 힘들었다. 항상 부담감이 컸다. 반드시 1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고 식단 조절도 해야 했다. 남들이 하나를 할 때 나는 둘을 해야 했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이런 과정이 나를 이 자리로 이끈 것 같다.
-‘제2의 이상화’가 될만한 후계자를 꼽자면.
△김민선(의정부시청)을 추천하고 싶다. 나이는 어리지만, 정신력이 강한 선수다. 내 어렸을 때 모습과 비슷하다. 평창올림픽 때 같은 방을 썼는데 오히려 내게 떨지 말고 잘 하라고 하더라. 좋은 신체 조건도 갖고 있다. 김민선이 빙상 최강자가 되는 것을 보고 싶다.
-김연아 등 주변 선수들에게 연락을 받았나.
△한국에 있는 친구보다 외국 친구들에게 많은 메시지 받았다. 스벤 크라머르(네덜란드)와 나오도 메시지를 보내줬다.
- 연예소속사와 계약을 했는데 혹시 연예계 진출 계획은 없나.
△아직 향후 계획이 없다. 연예소속사라고 해도 속해있는 스포츠 스타가 많다. 그들과 자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지금 기획사를 선택했다.
-선수 생활하면서 특별히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나.
△겨울에 성적 내기 위해 여름에 열심히 훈련한다. 열심히 훈련을 하는 과정이 힘들지만 재밌었다. 지금은 그런걸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평창 올림픽 전은 참 힘들었다. 메달을 못 따면 어쩌지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부담 때문에 제대로 자본 적이 없다. 최근까지도 운동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알람을켜놓고 잤다. 이제 알람을 다 끄고 편하게 자고 싶다.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스스로 꼽는다면.
△내 주변 친구도 그렇고 힘들다고 포기하는 친구가 많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쟤도 하는데 왜 난 못하지’라는 마인드로 임했다. 안되는 것을 운동으로 노력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