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보이’ 박태환(25·인천시청)은 메달을 따고도 웃을 수 없었다. 23일 그는 인천 문학 박태환수영장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에서 3분48초33을 기록하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수영장에서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토로했던 박태환의 짧은 인터뷰는 중계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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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43초23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딴 쑨양(23·중국), 3분44초48로 은메달을 획득한 하기노 고스케(20·일본)와 달리 박태환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아시안게임 3연패라는 위대한 도전에 나선 박태환은 메달을 추가하고도 죄스러운 생각에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사실 박태환의 성적은 어느 정도 예상됐던 것이다. 지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최고점을 찍은 박태환은 2012 런던 올림픽을 기점으로 서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후원조차 끊긴 박태환이 이번 아시안게임서 얼마나 잘해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기대보단 우려 속에 중계를 지켜보던 시청자들이 많다. 금메달이라는 기적은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따낸 동메달은 국내 수영계의 악조건을 극복한 값진 결과물이었다. 거대 자본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등에 업고 대회에 출전한 쑨양과 하기노의 성취와는 비교될 수 없다.
쑨양은 중국 정부와 각종 기업으로부터 연간 20억 원 이상 훈련 지원을 받았다. 중국 정부와 기업들은 재능 있는 선수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설령 스타가 된 선수가 슬럼프를 겪거나 부상을 당해도 기다리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육상 스타 류시앙은 2008 베이징 올림픽 육상 남자 110m 허들에서 부상을 이유로 기권했다. 그러나 각종 후원사들은 그의 복귀를 기다리며 여전히 류시앙에 대한 후원을 끊지 않았다. 당시 후원사들은 중국 전역에 내건 류시앙의 광고판들도 내리지 않고 그의 정상 복귀를 기다렸다.
반면 박태환을 후원해 온 SK그룹은 지난 2012 런던올림픽 후 박태환과 재계약하지 않았다. 박태환이 금메달 획득에 실패하자 광고 효과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에서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 포기하는 쪽을 택했다. 박태환은 우형철 SJR 대표와 팬들의 모금, 자비로 근근이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나 지난 7월 SJR의 사정으로 지원이 중단되면서 다시 재정적 어려움에 시달려야 했다. 박태환은 국가대표 선수로 마땅히 가야 할 전지훈련조차 가기 힘들 정도의 재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체계적인 시스템 하에서 훈련 받은 日 하기노
그렇다고 일본처럼 체계적인 시스템의 지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하기노는 일본 정부의 지원과 선진화된 시스템 속에서 급격한 기량 발전을 보였다. 그는 일본 스포츠 과학 육성기관의 지원을 받고 실력 향상을 꾀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체육계에 아낌없는 지원을 약속했다. 10여 년간의 노력이 기타지마 고스케(32). 하기노와 같은 수영 스타 발굴로 이어졌다.
박태환은 거대 자본의 힘도, 시스템의 수혜도 특별히 받지 못한 채 성장한 경우다. 게다가 대한수영연맹으로부터 런던 올림픽 당시 포상금을 뒤늦게 지급받는 등 홀대 취급도 받았다. 심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한 상황이 지속됐다.
23일 남자 자유형 400m 경기 후 박태환의 뼈있는 인터뷰는 한국 수영계의 현실을 상기하게 만들었다. 박태환수영장서 아시안게임 메달을 따고도 미안하다는 소감을 전한 박태환. 한국 수영계에 제2의 박태환이 등장하기 위해선 든든한 지원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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