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 냉혹한 현실 확인한 여자배구

  • 등록 2022-07-04 오후 4:38:02

    수정 2022-07-04 오후 4:38:02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사진=FIVB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외국 속담에 ‘동 트기 전이 가장 어둡다(It‘s Always Darkest Before the Dark)’는 말이 있다. 지금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게 해당되는 말일지 모른다.

지난해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에서 4강 신화를 쓴 뒤 세대교체에 돌입한 한국 여자배구가 1년 만에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았다.

세계랭킹 19위 한국은 3일(한국시간) 불가리아 소피아의 아르미츠 아레나에서 열린 2022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3주 차 예선 라운드 12차전에서 중국(3위)에 세트 스코어 1-3(13-25 25-19 19-25 24-26)으로 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12전 전패에 승점 0점이라는 충격적인 성적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2018년부터 본격 시작한 VNL에서 1승은 커녕 승점 1점도 얻지 못한 팀은 한국이 사상 처음이다. 그전까지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낸 팀은 2018년 아르헨티나로 1승 14패 승점 3을 기록했다.

이번 대회에서 한국은 12경기를 치르면서 겨우 3개 세트를 따내는데 그쳤다. 심지어 중국, 일본(7위)는 물론 한 수 아랴로 평가됐던 태국(13위)에게도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완패했다.

한국 여자배구는 지난해 도쿄올림픽 4강 신화 이후 김연경(34·흥국생명), 양효진(33·현대건설), 김수지(34·IBK기업은행) 등 ‘맏언니’들이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이후 세대교체를 위해 젊은 유망주들을 대거 발탁해 이번 VNL에 나섰다. 전체 엔트리에서 2000년대생 선수만 8명이 포함됐다.

하지만 세대교체 의지와는 별개로 너무 준비없이 VNL에 나섰다. 일단 도쿄올림픽 4강 신화를 이룬 스테파노 라바리니 현 폴란드 여자대표팀 감독 후임으로 지휘봉을 잡은 세사르 에르난데스 곤살레스 감독이 선수들과 손발을 맞출 시간이 없었다.

세사르 감독은 터키 프로팀 일정 탓에 출국 3일전에야 한국 대표팀에 들어왔다. 사실상 선수들 얼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VNL에 나섰다. 경기를 치르면서 처음부터 다시 손발을 맞춰야 했다.

이번 VNL은 3주간 12경기를 치르는 강행군으로 치러졌다. 대회를 치르면서 팀을 원하는 방향으로 이끈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7차전까지 한 세트도 빼앗지 못하고 세트 스코어 0-3으로 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대회 후반으로 갈수록 경기력이 조금씩 나아졌다는 점이다. 대등한 싸움을 이어가고 세트를 따내는 경우도 늘어났다. 마냥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의미다.

실제로 그동안 국제대회 경험이 없거나 일천했던 어린 선수들은 이번 대회를 통해 귀중한 경험을 쌓았다. 강소휘(GS칼텍스), 이한비(페퍼저축은행), 이주아(흥국생명), 이다현(현대건설) 등이 가능성을 보여줬다.

강소휘는 대회를 마친 뒤 SNS를 통해 “다들 전패하는데 부끄럽지도 않냐 욕하고 기자님들도 안 좋은 기사를 많이 쓴 걸 알고 있다”며 “우리 선수들 그리고 감독님, 코칭스태프 모두가 피땀 흘리면서 최선들 다해 노력했다. 서로 믿으면서 계속 시도해본 것은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선수단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배구인생 19년 중 이번 VNL이 교훈을 제일 많이 얻은 것 같다”며 “쓰러져도 오뚝이처럼 일어나고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그런 선수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환상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현재 한국 배구의 냉정한 현실을 깨닫고 밑바닥에서부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일이다.

당장은 고통스럽고 암울해도 장기적으로 세대교체라는 목표를 위해 중심을 잡아야 한다. 김연경 같은 걸출한 스타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면 당장 올림픽 출전이나 성적에 미련을 두기 보다 긴 시간을 두고 한국 배구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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