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수 사태로 본 WBC 그리고 월드컵

  • 등록 2009-03-04 오후 7:31:02

    수정 2009-03-04 오후 9:19:39

▲ 추신수

[도쿄(일본)=이데일리 SPN 정철우기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코 앞에 둔 한국 대표팀이 추신수 문제로 여전히 안갯속을 헤매고 있다. 1일 일본 도쿄에 입성한 뒤 부터 "내일이면 해결될 것"이라던 추신수 출장 여부가 4일(이하 한국시간) 오후까지도 아무런 결정이 내려지지 않고 있다.

사실상 출장 쪽으로 기울던 분위기는 4일 오전, 클리블랜드 구단이 추신수의 출장에 이의를 제기하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추신수가 경기에 나설 수 있을지 없을지는 4일 늦은 밤, 혹은 5일 오전이 돼야 결정될 전망이다.

WBC 대회 규정은 메이저리그 소속 구단이 부상 선수의 출전에 이의를 제기할 경우 '구단-선수노조-대회 총괄 담당의사'의 표결에 따라 결정하게 돼 있다.

무척이나 낯선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익숙한 국제경기인 축구의 월드컵에선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의 웨인 루니는 프리미어리그 경기 중 입은 부상으로 몸이 완전치 않음에도 대표팀에 합류, 결국 조별리그 2차전부터 경기에 나선 바 있다. 그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루니의 대표팀 발탁여부에 이렇다할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축구 종가'인 잉글랜드 선수여서가 아니라 다른 나라의 누구였어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축구와 야구는 많은 것이 다른 종목이다. 그러나 국제대회마저도 그 길을 달리하고 있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다. 월드컵과 WBC. 왜 이렇게 큰 차이가 나는 걸까.

▲국제대회 VS 초청대회
월드컵과 WBC는 같은 듯 보이지만 전혀 차원이 다른 대회다. 월드컵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사실상 모든 회원국이 참가하는, 말 그대로 국제대회다.
 
WBC는 다르다. 다양한 국가가 참가하기는 하지만 참가국은 대회를 주관하는 메이저리그사무국(MLB)이 결정한다. WBC는 국제야구연맹(IBAF)이 개최하는 대회가 아니라 MLB와 메이저리그선수노조(MLBPA)가 공동 주최기구로 돼 있다. 추신수의 출전 여부를 놓고 삼각협의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반면 월드컵은 시작부터 국가간 경쟁이 치열했던 대회다. 축구는 전쟁(1970년 엘살바도르-온두라스)을 불러일으킬 만큼 내셔널리즘이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이기도 하다.
 
레알 마드리드,바르셀로나,발렌시아,리버풀,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 유럽 빅리그의 정상급 클럽들이 'G14'를 결성하는 등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국제대회의 경우 여전히 국가가 클럽을 우선하는 경향이 강하다.
 
야구는 다르다. 빅리그는 오직 메이저리그만이 존재할 뿐이다. WBC 역시 국가간의 경쟁심이 만들어낸 대회가 아니라 메이저리그의 새로운 수익 창출 통로를 위해 시도된 하나의 이벤트일 뿐이다.
 
당연히 MLB를 구성하고 있는 메이저리그 구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비싼 몸값의 선수를 내보냈다가 부상을 당해 거액을 날려버리는 경우가 속출할 경우 WBC는 존립 자체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각 참가국 별로 자체 트레이너와 의무진이 있음에도 WBC 조직위원회가 따로 트레이너를 (자비를 들여)나라별로 파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월드컵과 WBC 그리고 한국 스포츠
아무리 국가별 경쟁이 중요하다 해도 국가간 이익이 창출되지 않으면 대회 열기는 시들해질 수 밖에 없다.
 
월드컵은 대회 출전만으로도 각국 축구협회의 수익 창출이 가능하다. 유니폼 스폰서와 이익 배당 등 성과가 높을수록 더 큰 열매를 따낼 수 있다.
 
WBC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은 엄연히 상위 랭크의 참가비를 받는 초청국이며 역시 유니폼 스폰서와 대회 수익에 대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축구와 야구 모두 한국의 입장에서만 보면 손해볼 것 없는 대회인 셈이다.
 
프로리그가 만성적으로 적자운영되고 있다는 점도 협회가 주도적으로 선수 구성 등을 이끌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모기업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해 팀을 운영하다보니 금전적 손실에 대한 관념은 매우 희박한 것이 우리 프로스포츠의 현 주소다. 구단은 소속 선수가 다치더라도 어느 정도의 금전적 손해를 보게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심하게 표현하면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적자에 둔감한 탓이다. 수익 창출 보다는 성적 향상이 더 큰 과제다. 돈으로만 놓고 보면 무슨 손해가 어떻게 나왔는지 파악할 시스템 조차 미비하다.  
 
성적이 나빠지는 문제가 나오지만 그건 구단 운영진 보다는 감독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성적에 대한 책임은 구단 임원 보다 현장 감독들에게 묻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기 때문이다.
 
▲팬심은 어쩌라고...
문화관광부는 WBC의 지상파 중계가 무산될 위기에 놓여있지만 그저 뒷짐만 지고 있다. 진정한 국제대회인 월드컵과 MLB 초청대회인 WBC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 공식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팬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한 처사다. 야구의 메이저리그는 축구의 빅리그와는 또 다른 의미다.
 
축구는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등 '빅3'리그를 비롯 유럽과 남미, 아시아등에 국가별 리그가 활성화 돼 있다. 빅무대에 도달하기까지 다양한 루트가 있는 셈이다. 
 
야구는 다르다. 한국 입장에서 메이저리그는 여전히 꿈의 무대다. 이것 역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야구의 스타들이 메이저리그의 영웅들과 맞대결을 펼칠 수 있다는 건 말 그대로 꿈과 같은 이야기다. WBC는 그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무대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WBC가 '일개 프로리그가 주최하는 친선경기'일지 모르지만 그건 야구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판단이다. 
 
메이저리그는 야구 국제대회의 출발은 아닐지라도 완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야구팬들에겐 더할나위 없이 소중한 대회인 것이다. 한국 야구는 2006년 1회 대회에서 4강 신화를 이루며 전 국민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여전히 가장 인기 높은 프로스포츠이기도 하다.
 
KBO가 수익을 떠나서라도 WBC를 외면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여기에 그 이유가 있다. 억울하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팬들에게 정말 클래식이 될만한 국제대회는 WBC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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