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고병준 음악 감독님이 아침 드라마 ‘선택’을 맡고 계시다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조감독 역할을 하던 제가 입봉 아닌 입봉을 하게 됐죠. 그때 쌓은 인연을 계기로 당시 조연출이셨던 장태유 감독님이 2006년 연출한 ‘101번째 프러포즈’라는 미니시리즈로 정식 입봉하게 됐고요. 장태유 감독님은 ‘별에서 온 그대’ 감독님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대목은 전창엽의 꿈이 원래는 싱어송라이터였다는 점이다. 한때 데뷔를 목전에 둔 순간을 맞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전창엽은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음악감독의 길을 걷게 됐다.
“26살 때 가수가 되는 줄 알고 들어간 회사에서 오진우 음악감독님의 문하생처럼 지내게 됐어요. 그러다가 점차 드라마 음악을 만드는 일에 재미를 느끼게 돼 진로를 틀게 됐고요. 사실 가수로 데뷔해서 성공하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힘든 일이잖아요. 한편으론 ‘음악 감독이 되어 내가 만든 곡을 직접 부르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도 있었죠. 가지를 다르게 뻗어보기로 했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어느덧 20년 넘게 일한 50대 음악감독이 되었네요.(미소).”
전창엽은 업계에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리게 해준 작품으로 2009년 SBS에서 방송한 ‘찬란한 유산’을 꼽았다.
“이승기 씨가 주연을 맡았던 작품인데, 시청률이 45%가 넘었을 정도로 인기가 대단한 드라마였다보니 자연스럽게 제 이름도 많은 분께 알려졌어요. 그 이후 ‘뿌리깊은 나무’, ‘별에서 온 그대’,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등 소위 ‘초대박’이 난 드라마들과 함께하면서 음악감독으로서 입지를 다지게 됐죠.”
“작은 차이가 연출자분들과 제작자분들의 귀를 간지럽혔을 거고, 대중에게도 전달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낭만닥터 김사부3’ 이후 맡게 되는 작품은 사극인데 새 작품 또한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대중이 뻔하지 않다고 느낄까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상태에요. 비결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선택과 집중을 중요시하는 편이기도 해요. 유명 음악감독 분들 중에선 1년에 7~8개 작품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전 1~2개 작품 정도만 맡아요. 선택과 집중을 위해 다작을 하지 않는 것인데 감사하게도 그간 담당했던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반짝여줬죠.”
“음악 방향성이 수차례 바뀌었던 작품이에요. 처음엔 영화 ‘대부’ 음악 같은 웅장하고 무게감 있는 풀클래식 스타일로 작업했는데, 감독님이 본 시리즈 음악처럼 록킹한 스타일로 바꾸길 원하셔서 수개월 동안 작업한 20여곡을 모두 드롭시켰어요. 문제는 그 이후 새로 작업한 음악들도 마음에 들지 않아하셨다는 거예요. (웃음). 그때 포기할 법도 했지만, ‘저를 믿고 두 달만 기다려주세요’라고 한 뒤 작업을 다시 시작했고, 고민을 거듭한 끝 클래식과 신디사이저를 절반씩 섞은 하이브리드 음악으로 방향을 잡고 작업을 이어갔어요.”
‘재벌집 막내아들’에 삽입돼 시청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음악들은 그런 우여곡절을 거친 끝 탄생해 세상에 나왔다. 전창엽은 “인터뷰를 통해 작품 주연을 맡은 송중기 배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음악감독을 맡은 작품을 통해 탄생한 가창곡 중에선 ‘별에서 온 그대’ OST인 린의 ‘마이 데스티니’(My Destiny)를 잊지 못할 노래로 꼽았다.
“드라마 OST 후보로 여러 차례 올렸지만 번번이 탈락해서 오랜 시간 빛을 보지 못한 곡이에요. ‘별에서 온 그대’ OST로 쓰일 당시에도 힘겹게 채택되어서 급박하게 녹음이 진행됐었고요. 그래서 드라마에 임팩트있게 깔린 뒤에도 후반 작업이 덜 된 상태라 음원이 곧바로 나오지 못했는데, 그럼에도 차트에서 1위로 직행했던 기억이 나요. 음악 자체의 생명력과 힘을 체감하게 해준 곡이라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별에서 온 그대’가 한류 열풍의 중심이 될 정도로 크게 히트한 이후 전창엽을 향한 중국 드라마 업계의 러브콜도 이어졌다. 전창엽은 “지금은 한한령 여파 등으로 교류가 끊긴 상황이지만 ‘별에서 온 그대’ 이후 음악 감독을 맡은 중국 작품이 10개가 훌쩍 넘는다”고 돌아봤다. 이어 그는 “언제든 여건이 맞는다면 해외 작품에도 참여할 의사가 있다”면서 “기회가 된다면 일본 드라마 음악 감독도 맡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언젠가 연주곡으로도 히트곡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일본의 음악감독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와 같은 메가 히트 연주곡이 나온다면, 자연스럽게 음악감독들에게 더욱 큰 스포트라이트가 쏠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된다면 후배 음악감독들에게도 더 좋은 길이 열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앞으로 뮤직레시피를 이끌면서 대중에게 사랑받는 좋은 음악을 많이 만들어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