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닉스 오픈 16번홀에 가보니.."야유와 환호, 정해진 룰이 있었다"

  • 등록 2017-02-07 오전 11:21:24

    수정 2017-02-07 오전 11:21:24

피닉스 오픈 ‘콜로세움’ 16번홀에 관중들이 모여있다.(사진=PGA 투어 제공)
[스코츠데일(美 애리조나주)=이데일리 조희찬 기자] “한국 면허증이라고? 그럼 안 되는데…” 이런, 여권을 호텔에 두고 왔다.

피닉스 오픈 마지막 라운드가 열린 5일(현지시간) 16시간을 날아 겨우 대회장에 도착했다. 얇은 재킷도 버거워지는 날씨. 16번홀 입성 전 피닉스 오픈의 ‘필수 아이템’ 맥주가 절실했다. 직원이 갤러리 행사장 한 쪽에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만 21세 이상’이 표시된 팔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평소 나오지 않던 용기가 술 앞에선 나왔다. 한국 운전 면허증을 당당히 내밀었다.

“나는 일본계 미국인이라 이건 못알아보겠는 걸?” 신분증 검사기를 손에 쥔 직원이 말했다. 약 2분간 미간을 찌푸리던 이 일본계 미국인 직원은 “내 목 내걸고 주는 거야”라며 팔찌를 손목에 채워줬다.

맥주는 ‘블루문’을 골랐다. 7달러였지만 앞선 남자 손님들이 미모의 직원에 꼭 팁 3달러씩을 챙겨 주고 갔다. 팁을 주지 않으면 ‘역시 동양인’ 소리를 들을까, 팁 1달러를 냈다. 직원이 이를 보지 못해 “나도 팁 넣었다”라고 하자 귀찮다는 듯 “응, 봤어”라고 했다. 결국 8달러에 생맥주 한 잔과 무안함을 ‘득’했다.

16번홀 앞에 서자 ‘맥주 아저씨’가 “여기서부터 40분 기다려야 한다. 어제는 2시간이었다”라고 껄껄 웃으며 위로를 건넸다. 맥주 한 잔으로는 40분은 너무 길었다. 결국 기다리는 동안 맥주 두 잔을 16달러에 더 샀다.

낮술에 땅이 조금씩 흔들릴 때쯤, 드디어 16번 콜로세움 홀에 입성했다. 소음은 딱 LG와 두산의 잠실전 두 배였다. 자리는 일부러 뒤에 잡았다. 기사를 쓰러 온 만큼 방해받지 않고 광경을 관찰하고 싶었다. 1분도 가지 않았다. 기자를 비롯해 왼쪽 자리의 대머리 아저씨도, 앞자리의 오하이오 주립대 유니폼을 입은 학생 셋도 이미 폴짝폴짝 뛰고 있었다. 폴이라는 학생이 맥주잔 밑을 쳐 8달러 맥주가 바닥에 쏟아졌지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언론에 소개된 16번홀은 경기 내내 소음을 만드는 곳으로 소개됐지만, 여기에도 일정한 룰이 있었다. 그린 위에 공을 못 올리면 무조건 야유다. 그린 위에 올렸지만 홀컵에서 거리가 멀면 역시 야유다. 버디 퍼트를 넣고 모자나 공을 관중에게 주지 않아도 야유가 쏟아진다. 그러나 필 미컬슨과 존 람 등 애리조나주립대 출신은 면죄부가 주어진다. 또 3m 거리 등 애매한 거리의 버디 퍼트가 남으면 관중은 발을 동동 굴려 북소리를 내거나 파도타기로 선수들을 자극한다.

티 샷 박스와 그린 옆 마셜 등은 선수들이 샷을 하려는 동작을 취하면 조용히 하라는 ‘Quiet’ 팻말을 들었다. 항상 시끄러워도 될 줄 알았으나, 선수들이 어드레스에 들어서면 대화는 가능하되, 선수의 샷을 방해할 정도의 소음은 여기서도 ‘매너’가 아니었다. 실제로 마쓰야마 히데키가 이날 샷 동작을 취할 때 한 갤러리가 닭 울음 소리를 냈다가 주변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았다.

‘골프의 해방구’라고 불리는 이곳의 문화는 한국 프로야구 관중 문화와 많이 닮아 있었다. 올해 10월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더CJ컵@나인브릿지’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이 대회장을 찾았는데, 꼭 긍정적으로 검토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최 측은 신분증 확인 후 만 21세 이상에게만 술을 살 때 필요한 팔찌를 준다.(사진=조희찬 기자)
피닉스 오픈 직원이 16번홀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갤러리들에게 맥주를 8달러에 팔고 있다.(사진=조희찬 기자)
16번홀 그린 위에서 마셜이 머쓱하게 ‘Quiet’라고 적혀진 팻말을 들고 있다.(사진=조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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