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말을 빌면 이렇다. “(1차전서 부진했던)병헌이 형은 그냥 놔두는 게 상책이다. 나도 있는 데 그것 갖고 스트레스를 받나. 놔두면 잘 할 거다. 어제 나도 ‘상우야 던져라. 내가 치고 욕먹을게’라는 마음이었다. 리버스 스윕도 당하고. 3승1패에서 뒤집혀도 보고, 한국시리즈에서 병살도 쳐보고 난 다 해봤다. 이길 때까지는 모른다. 마지막 3승째를 거둘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랬다. 김현수는 2007년 데뷔 이후 2번을 빼면 매년 가을 야구를 했다. 우승 빼곤 거의 모든 경험을 한 선수가 바로 김현수다.
그래서 문득 그에게 궁금한 것이 한 가지 생겼다. “포스트시즌에 못 나가는 것과 포스트시즌에서 지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싫은가요?”
그의 대답은 곧바로 나왔다. “포스트시즌에서 지는 거죠. 그건 정말 아프거든요.” 순간 질문이 미안하게 느껴질 만큼 쓸쓸한 표정이 스쳐갔다.
그렇다. 하루면 잊혀질 아픔. 그러나 1년을 망쳐 포스트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것 보다 아플 만큼 눈 앞의 1패가 두렵다. 그래서 가을 야구는 누구에게나 절실하다.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도 그 분위기에 압도될 수 밖에 없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무서운 법이다.
겪어 본 사람에겐 두 번 다시 해보고 싶지 않은 경험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시리즈 2위팀도 끝까지 시상식에 남아있어야 했다. 2010년 우승을 차지한 SK 선수들은 하나같이 “2009년, 2위 수상대에 섰던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김현수에게도 그래서 가을 야구는 여전히 부담스럽다. 자신에게 찬스가 걸린 상황에 대해 “심장이 목에 걸려 있는 것 처럼 쿵쾅거렸다”고 표현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포스트시즌이 되면 우리는 매우 작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듣는다. 오심, 신경전, 징크스 등등. 어찌보면 너무 작은 일에 집착하는 듯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만큼 모두가 절실하다는 뜻이다. 작은 것 하나까지 신경을 쓰게 되는 건 그 뒤를 따를 아픔이 너무 큰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