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SPN 김용운 기자] 브레히트는 나치 치하를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로 규정했다. 대학살이 횡행했던 시대, 감성을 노래하는 것은 시인의 도리가 아니었다고 생각해서다. 이는 1980년대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도 일종의 명제가 됐다. 인권이 억압당하고 억울한 죽음이 이어지는 군부독재 시절. 반독재 투쟁과 민주화를 위해 청춘을 걸었던 이들에게도 1980년대는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정시를 쓰기 어려워도 사람의 가슴에는 사랑이 꽃피고 낭만이 피어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그에 따른 희생을 불사하는 용기도 결국 인간이 인간에게 희로애락을 느끼지 못한다면 얻을 수 없는 동력들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유명 작곡가 상훈과 그가 아끼는 후배 현우. 그리고 서점 직원에서 일약 가수로 데뷔하는 여주 세 명이 주인공이다.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를 고뇌하는 현우는 투쟁의 대오에 앞장서면서도 서정적인 심성을 잃지 않는다. 이를 지켜보는 작곡가 상훈은 현우와 함께 곡을 만들고, 이 노래 중에 어느 곡은 결연하게 머리띠를 묶은 이들에게 힘이 되어준다.
이문세의 목소리를 통해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작곡가 이영훈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에도 서정적인 발라드곡으로 세상에 지친 청춘들에 나지막한 위로를 건넸다. 최루탄이 난무하고 고문이 횡행하는 시대에 그의 노래는 `시`가 되었고 `그녀의 웃음소리`가 되었고 `깊은 밤을 날아서` 현실에 좌절한 청춘들에게 `가로수 그늘아래`쉼터가 되었다.
|
이지나 연출은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이기에 누구보다 힘들게 서정적인 발라드를 작곡하고 또 노랫말을 붙였을 고 이영훈의 삶을 무대 위에 재현했다. 상훈에게 투사된 이영훈의 모습은 그가 어떤 고뇌의 과정 끝에 발라드 명곡을 만들었는지 짐작게 한다. 이영훈은 세상과 맞서지는 않았지만 세상에 맞서는 이들의 지친 영혼과 소모된 심신을 온몸의 진을 빼서 만든 곡들로 위로했다. 설령 그 노래가 단지 유행가라는 이름으로 쉬이 불리고 혹은 시대를 외면했다며 은연중에 손가락질을 받았어도 말이다.
`광화문 연가`의 뮤지컬 넘버들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명곡은 누가 불러도 좋다는 것을 새삼 증명했다. 이지나 연출은 이영훈의 히트곡을 극 속에 유기적으로 배치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하나의 스토리를 위해 작곡된 노래가 아니기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음이 분명하다.
국내 창작 뮤지컬이 세종문화회관을 초연 무대로 삼는다는 것을 일종의 모험이다. 깊고 넓은 무대를 채우기에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기 때문이다. `광화문 연가`는 이를 정교한 조명 연출로 가렸고 대형 막에 투영되는 다양한 이미지로 상쇄했다. 1층보다 2층에서 볼 때 이런 전경은 더 잘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상훈과 여주 현우의 삼각관계가 개연성이 부족한 것은 극의 몰입을 방해하는데 결정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여주가 사랑한 것이 상훈이었는지 현우였는지 명확하게 알기 어렵다. 이로 인해 극 전체의 개연성도 약해졌다. 앙코르 공연 때 이 부분이 보강되기를 바란다.
커튼콜 때 `붉은 노을`이 들리기 시작하면 1층과 2층의 중년 관객들은 너나없이 일어나 노래를 열창했다. 그 모습은 하늘에 있는 이영훈 작곡가에게 가장 훌륭한 `굿바이`가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