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불패의 병법](2)그들은 왜 승리에 집착하는가

  • 등록 2011-01-12 오후 12:41:47

    수정 2011-01-12 오후 2:11:03

[이데일리 SPN 정철우 기자]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다. 국민의 생사가 달려 있는 곳이며 국가의 존망이 결정되는 길이니 깊이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손자병법의 첫 머리에 나오는 문장이다. 손자병법은 흔히 '싸움의 기술'이 담겨 있는 책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손자는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 보다 전쟁의 의미, 승리에 담겨 있는 무거운 책임감을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있다.

손자의 시대, 전쟁은 군주가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다. 손자는 병법을 말하며 군주에게 전쟁의 무거움을 먼저 깨우치려 했던 것이다.

야구에서, 특히 한국 프로야구에서 감독은 옛 시대의 군주와 같다.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아직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감독은 단순히 나아가 싸워 이기는 것 뿐 아니라 전력 보강과 정비, 심지어 선수들의 카운셀러까지 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초보 감독들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에 봉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구를 꾸려가는 능력은 갖고 있을지 몰라도 사람(선수)의 마음까지 다독이고 팀을 꾸려가는 힘은 경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승자는 하나(한 팀) 뿐이다. 우승하지 못하면 모두 패자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준우승팀을 차지하고도 사장,단장,감독이 모두 경질된 삼성이 좋은 예다. 2000년대 3차례의 우승 전력도 그저 과거일 뿐이었다. 세상은 지는 눈 앞의 승리에만 박수를 보낸다.  

감독의 판단과 결단의 중요성은 비단 경기 뿐 아니라 그 밖에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도 영향을 미친다. 그 결정이 팀과 전쟁(경기)의 승패를 좌우하고 방향을 바꾼다.

훌륭한 참모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감독의 요구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 SK 선수들이 2010 한국시리즈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기뻐하고 있는 모습. 사진=SK 와이번스
김성근 SK 감독은 언제나 고민 속에 자신을 가두어 놓는다. 한 경기가 끝나면 다음 경기를 고민하고 시즌이 끝나면 다음 시즌을 걱정한다. 생애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2007년 그날 밤, 김 감독의 일기장엔 "이제 코나미컵이다. 어느 팀이 올라올까. 하늘은 내게 하루의 여유도 주지 않는구나"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매우 결단력 있는 이미지를 갖고 있지만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 없이 많은 고민을 거친다. 밤을 하얗게 지새우고서야 겨우 잠드는 일상의 반복이다.

간혹 김 감독은 "우유부단한 사람"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그런 비아냥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결정이 얼마나 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의 결정을 내리기 전까지 수없이 많은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SK는 11일 일본 고치현으로 스프링캠프를 떠났다. 주축 선수는 물론 예비 자원까지 70여명의 메머드급 훈련단이다.

그러나 군 문제로 출국이 어려운 투수 고효준은 한국에 남아야 했다. 다른 팀이었다면 2군 캠프에 합류해 훈련하는 것으로 매조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김 감독은 달랐다. 이미 내년 시즌 마운드 운영의 큰 틀을 짜 둔 상황. 며칠의 고민 끝에 고효준이 적어도 15경기 이상 선발로 나서줘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고민은 고효준의 훈련 효율성을 위해 전담 코치를 붙여야 한다는 것에까지 이르게 됐다. 김 감독은 양상문 전 롯데 투수코치부터 일본 인스트럭터까지 전방위로 사람 구하기에 나섰다. 구단 입장에선 갑작스런 결정이었을 것이다. 비용 부담도 생긴다. 하지만 김 감독의 그런 완벽주의는 지난 4년간의 영광으로 돌아왔다.

승리는 야구단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또한 야구단 구성원의 삶을 성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얼마 전 SK 주축 선수들의 2007년 연봉과 2011년 연봉을 비교하는 글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된 바 있다. 정근우 최정 김강민 등은 4년 전에 비해 적게는 3배에서 많게는 5배까지 연봉이 뛰었다.

규정 타석도 채우지 못했던 선수들이 이젠 골든글러브를 노리고 대표팀에 선발되는 선수들로 바뀌었다.

"차라리 죽는 것이 편하겠다"는 말이 나올 만큼 단내나는 훈련의 결과였다. 또한 보다 완벽한 준비를 위해 불면의 밤을 자청해온 리더의 힘이었다.

김 감독은 SK를 처음 맡은 뒤 선수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승부는 절실한 것이다. 너희들이 던진 공 하나, 스윙 한번에 네 가족들의 인생과 삶이 담겨 있다. 그런 절박함을 안다면 어떻게 허투루 공 하나를 보낼 수 있겠나."   그는 승리에 대한 보상에도 많은 공을 들인다. 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SK 구단엔 작은 소동이 있었다. 선수들에게 우승 여행을 약속했지만 정작 선수단과 가족까지 움직일 수 있는 비행기편을 구하지 못했던 탓이다.   백방으로 힘을 써봐도 안됐다. 구단은 여행비를 현금으로 지급하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러자 김 감독이 직접 나섰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 여행사까지 찾아 나섰다. 결국 괌 직항이 아니라 일본 경유편을 찾아내 예약까지 끝냈다.    그렇게 SK는 첫 우승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 당시 김 감독은 "1년 동안 가족들도 함께 고생하지 않았나. 돈 몇푼 보다는 추억을 꼭 안겨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정준 SK 코치는 "아침에 감독님의 방에 가 보면 메모장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장면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작게는 선발 오더부터 크게는 시즌 구상까지... 감독님의 고민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느낄 수 있다. 감독님은 늘 "판단은 머리로 결단은 배로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판단의 기준은 언제나 최악의 상황, 그리고 '위기 뒤 찬스'가 아니라 '찬스 뒤 위기'다. 연승 뒤 연패가 오듯, 좋았을 때 대비가 부족하면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 있는 것이 야구이고 인생이다. 감독님의 판단이 일반적인 이해를 얻기 어려울 순 있지만 팀을 지켜내는데는 큰 힘이 되는 이유다"라고 말했다.

▶ 관련기사 ◀ ☞[SK 불패의 병법](1)프롤로그 '야구 그리고 삶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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