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종영한 드라마 ‘고교처세왕’에서 열연한 배우 조한철이 이데일리와 인터뷰를 갖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정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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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연기로 말하는 배우가 있다. 이름보다 얼굴로 존재를 비추는 이들이다. 이름 석자의 생소함은 안면 인식의 순조로움으로 해결된다.
배우 조한철도 그런 사람이다. 이름을 들으면 ‘누구지?’ 할 수 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이름을 쳐보면 반응은 다르다. ‘아, 이 사람! 알지’라는 말이 나온다. 그는 작품으로, 캐릭터로, 연기로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한 몇 안되는 배우다.
조한철의 최근 작품은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고교처세왕’이었다. 배우 서인국과 이하나가 주연한 작품이다. 극중 리테일팀 팀장으로 본부장 이형석의 부하 직원이자 그와 꼭 닮은 18세 남동생 이민석과 아슬아슬한 회사 생활을 공유하는 인물을 연기했다.
조한철은 MBC 드라마 ‘스캔들’, tvN ‘우아한 녀’, SBS ‘대풍수’ 등 그 동안의 작품을 보면 묵직하고 악랄하기도 한 모습이었다. ‘고교처세왕’은 조금 튀는 필모그라피다. 유일하게 궤를 함께 하는 작품은 케이블채널 MBC 에브리원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 흥미롭게도 이 작품 덕에 ‘고교처세왕’과의 인연도 닿게 됐다.
조한철은 “‘고교처세왕’의 감독님과 ‘할 수 있는 자가 구하라’의 감독님이 찬하다. 그 작품을 보고 ‘고교처세왕’ 출연 제의도 받았다”고 말했다. 시트콤 장르에서 ‘나, 이런 연기도 할 수 있다’를 보여준 조한철은 ‘고교처세왕’에서 그 가능성을 무한대로 확장했다.
| ‘고교처세왕’ 속 조한철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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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코믹 활극을 표방하는 ‘고교처세왕’은 다채로운 면을 품었다. 말그대로 코믹했고, 그 안에 로맨스도 있었다. 뭉클한 가족애로 휴머니즘도 느끼게 했고 형과 동생의 관계에서 미스터리한 느낌도 줬다. 이리 튀고 저리 튀는 장르 속에서 조한철은 코믹 한가지에 중점을 잡고 독특한 연기를 소화했다. 서인국, 이하나는 물론 리테일팀 직원들과 서인국의 극중 10대 친구들까지 다양한 연령대로 설정된 등장인물과 어색하지 않게 녹아들었다.
조한철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은 2명이었다. 다 어린 친구들이었는데 불편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서로 연기를 주고 받는데 있어서 양보고 했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펼쳐보기도 했다. 현장에서 가장 많이 웃어준 것도 감독님이었다. 자유롭게 노는 우리들을 잘 받아주신 덕에 연기하는 재미도, 화면으로 표현된 희열도 배가됐다”고 전했다.
서인국과 이하나와의 호흡에는 칭찬을 더욱 보탰다. “조연이 주연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내가 뭘 하든 웃어주고 ‘오빠 최고’라고 북돋아줬다”는 이하나와 “탁 털어놓고 연기하는 스타일이라 우리끼리 굉장히 재미있고 기분 좋게 촬영했다”는 좋은 기억을 안겨준 서인국은 고마운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 ‘고교처세왕’에서 열연한 조한철.(사진=김정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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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철이 ‘고교처세왕’을 촬영하며 얻은 가장 큰 묘미는 무엇보다 작가에 있었다. 조한철은 “이렇게 많이 애드리브를 쳐본 적도 없었”을 만큼 대본 밖의 영역에서 활보했다. 결과적으로 시청자에게 큰 재미를 주고 촬영 현장 분위기도 띄우는 계기가 됐지만 ‘내 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작가의 빈정을 상하게 할 여지도 있었다. 조한철 역시 이 부분에서 걱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조한철은 “반은 대사고 반은 애드리브였던 것 같다. 정말 우리 현장은 배우들이 정해진 것 이상을 보여주는데 욕심도 많았다. 서로 절제하자고, 오버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회를 거듭할 수록 배우들의 대사가 빨라지는 게 느껴질 정도로 서로 보여주고자한 모습이 많았다. 어느 날에는 작가님이 삼계탕을 사주신다고 현장을 방문했는데 눈치가 좀 보였다. 환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씀해주셔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작가의 격려에 조한철은 부담을 덜고 연기에 임했다. 보통 캐릭터를 연구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생각을 하는 조한철은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을지’의 히스토리를 만들곤 한다. ‘고교처세왕’에서는 자기관리를 포기한지는 오래고 집에서도 자신의 자리가 없는 요즘 직장인들을 표현하자고 마음 먹었다.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애매한 입장을 이어가는 ‘유부남’의 모습을 캐릭터에 녹이고 싶었다. 남들에겐 광대처럼 내 몸을 던지는 직장인이지만 사실은 외로운 남자였던 셈이다.
| ‘고교처세왕’ 속 조한철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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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철은 “감독님은 회사 생활을 해봐서 ‘팀장’이라는 자리가 세상 가장 힘든 위치라는 걸 안다고 하더라. 나도 그 부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부하 직원들한테 치이고, 위에서 까이는 그런 위치라더라. 극중에서 직원들이 대화하는 틈에 ‘뭔데뭔데?’ 이러면서 끼어들거나 서인국한테 친한척하고 걱정해주는 모습이 그런 면이었다”고 설명했다.
조한철은 자신이 구축해가고 있는 캐릭터가 틀리지 않다는 확신을 매회 받는 대본에서 찾았다. 전회 촬영에서 고민 끝에 보여준 연기가 편집됐을 때, 다음 회 대본에 그대로 녹아있는 신들을 보며 ‘작가와 내가 소통하고 있다’는 확신을 받았다고 했다.
조한철은 “작가님과 말없이 소통하는 느낌이었다. 작가님이 편집실에도 찾아와 배우들의 연기를 직접 보곤 했다. 편집된 내 연기가 다음 회 대사에 있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의도한 부분이 살아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 작가님에게 또 고마운 것은 나 뿐만아니라 사원들을 일일이 챙겨주려고 했던 부분이다. 작가님이 이 드라마를 따뜻하게 잘 이끌어주셨다. ‘고교처세왕’은 진화하는 드라마였다”고 말했다.
| “작가와 말 없이 소통하는 느낌이었다.”(사진=김정욱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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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을 연기하는데만 쏟은 배우에게도 욕심은 끝이 없다. 그동안 영화, 드라마로 활동을 이은 조한철은 10년을 꼬박 바친 연극 무대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매일 매일을 ‘오늘도 해냈구나’라는 뿌듯함, ‘내일은 더 잘해야지’라는 각오로 활력을 얻었던 그때가 요즘은 그립기도 하다.
조한철은 “난 욕구불만이다.(웃음) 욕심이 많다. 하고 싶은 것이 많다. 드라마, 영화만 하다보니까 또 매일 매일 10년 동안 해온 연극이 고파진다. 연기하면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받은 것도 연극 무대였다. 그 열정을 또 느끼고 싶지만, 아직은 기약이 없다. 더 많은 도전, 새로운 모습으로 대중에게 기억될 수 있도록 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