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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배우들이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을 걱정한다. 배역이 한정되고 연기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천의 얼굴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천의 얼굴이 되는 것만큼, 하나의 얼굴에 대체 불가능한 최고가 되는 것도 어렵다. 이유리는 ‘역대급 악녀’라 평가받은 연민정을 통해 악역의 최고 자리에 올랐다.
MBC 드라마 ‘왔다 장보리’는 후반부에 접어들어 시청률 30%를 웃돌았다. 체감 시청률을 40%를 넘어선 어느 ‘국민 드라마’ 못지않았다. 인기 일등공신은 이유리였다. 시청자들이 ‘왔다 장보리’를 ‘왔다 연민정’이라 부를 정도였다.
“이제 연민정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요.”
최근 데뷔 이래 가장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유리를 서울 동대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배역은 배역일 뿐이고 드라마는 끝났지만 악녀의 센 기운이 여전할 것 같았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녀는 반전이었다. 소리 높여 윽박지르듯 “~라고!” 말했던 연민정 특유의 어투는 없었다. 조용조용 말하는 가운데 웃음이 많았다.
“(‘왔다 장보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받을 거라 아무도 예상을 못 했어요. 신은경 선배님이 출연한 ‘욕망의 불꽃’을 재미있게 봐서 백호민 감독님을 믿었고 김순옥 작가님도 워낙 잘 쓰신다 명성이 자자해서 안할 수가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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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인 듯했지만 소신을 엿볼 수 있었다. 악역에 대해서도, 고정된 이미지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없었다. 자신만의 연기관도 확고했다. ‘무엇을 연기하냐’보다 ‘어떻게 연기하냐’가 더 중요했다.
“악역 자체보다는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으니까 걱정이에요. 또 악역을 한다고 했을 때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 ‘연민정 이상으로 잘해낼 수 있을까’란 고민은 있지만 이미지가 굳혀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이유리가 ‘그 이상의 것’을 고민할 정도로 연민정이 독하긴 독했다. 이유리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면서 “촬영이 한창일 때에는 혼자 귀가하기 무서울 정도였다”고 웃으면서 욕먹은 후일담을 전했다.
‘왔다 장보리’의 마지막 회는 이유리의 독무대나 마찬가지였다. 이유리의 드라마 ‘아내의 유혹’(2008~2009) 민소희 패러디는 말도 많았지만 단연 화제였다. 그녀는 “소리를 지르고 인상만 쓰다가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았다”며 인터뷰 후 진행된 사진 촬영에서 독자들을 위해 기꺼이 민소희 패러디를 선물했다.
이유리는 당분간 휴식기를 가질 예정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고 집에서 뒹굴뒹굴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올해 연말 시상식의 강력한 수상 후보로 떠올랐지만 상에는 욕심이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은 것만으로 만족해요. 다음에 어떤 배역을 맡게 될지 모르겠지만 ‘왔다 장보리’를 통해 연기할 기회가 많아진 것 같아서 그것만으로도 감사해요. 끝으로 전국의 연민정 이름을 가지신 분들께 죄송하고 시청자분들께 다시 한 번 큰 사랑 주셔서 감사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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