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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투수 야마모토 마사(히로)다. 야마모토는 1965년생이다. 현 주니치 감독인 다니시게 감독 보다 다섯 살이나 많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 선수다. 그저 공만 던지는 것이 아니라 최고령 승리 투수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50세 현역의 승리. 야마모토의 무엇이 이 처럼 믿겨지지 않는 일을 만들 수 있었는지를 꼭 직접 부딪히며 알아보고 싶었다.
가까이서 지켜 본 야마모토는 정말 신이 내린 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0살까지 마운드에 오르며 이렇다 할 부상 한 번 없었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하지만 그저 타고난 몸 하나로 지금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절대 오산이다.
주니치 마무리인 이와세에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마사(야마모토의 애칭)처럼 뛸 수 있다면 그 처럼 살 수 있겠어?” 이와세는 두 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얼마나 싫었는지 몸 서리를 치며 고개를 저었다. “마사처럼 하려면 앞으로도 10년을 더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오직 야구만 해야 한다. 정말 아무 것도 없이 야구만. 마사가 부럽지만 난 그렇게 못한다”며 힘 없이 웃어보였다.
야마모토는 여름 철엔 날 생선을 잘 먹지 않는다. 회나 초밥을 안 먹는 일본인이 상상이 가는가? 혹여라도 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야마모토를 위해 모든 가족들이 같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에게 미안해서라도 빈틈을 보일만도 하지만 야마모토는 그런 마음까지 참고 있었다.
예상과 달리 야마모토는 대단한 대식가였다. 먹는 걸 매우 좋아한다고 할 정도다. 하지만 그는 그 만큼 훈련을 많이 한다. 나이 오십 먹은 선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사람은 팀에 아무도 없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팀이 정해 준 훈련을 한 번도 빠진 적이 없다.
자율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고참이 되면 어느 정도 자기가 관리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야마모토는 기본은 다 지켰다. 일단 팀 훈련은 다 하고 제 할 일을 했다. 서른 좀 넘으면 고참 행세를 하려는 선수들에게 그는 살아 있는 교과서 같은 선수다.
그의 프로 첫 등판은 무려 1986년 10월6일이다. 입단 첫 해 부터 지금까지 정해진 루틴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말한 것이 아니라 그를 지켜 본 이들이 들려 준 이야기다.
캠프가 시작되면 야마모토는 뛰어서 훈련장까지 간다. 누구에게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혼자 먼저 나와 뛰기 시작한다. 이유? 간단했다. “난 몸이 다른 선수들 보다 늦게 풀린다. 함께 훈련하는 선수들에게 폐가 안되려면 뛰어가며 몸이 풀리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일본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이라면 그들에게 맥주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 것이다. 마치 우리의 김치 처럼 당연하게 따라오는 메뉴다. 야마모토는 시즌 때 거의 맥주를 입에 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자리라면 딱 한 잔만 한다.
한 번은 “이 맛있는 걸 참을 수 있느냐?”고 물으니 “선수 생활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그때까지만 참아보려 한다”고 대답했다. 그 소리를 들은 한 코치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마사는 1986년부터 똑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존경 받고 존중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가장 냉정한 사람이라는 묵직한 진리를 그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 서용빈 주니치 드래곤즈 코치
*이데일리는 현재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2군 타격 코치로 활동중인 서용빈 코치의 칼럼을 전재 합니다. 그동안 단순한 연수나 견학 차원에서 일본 구단을 지켜 본 지도자들은 적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 코치는 1차 연수를 이미 끝낸 바 있으며 올 시즌 주니치의 정식 코치로 2군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일본 연수와 국내 구단에서의 지도, 여기에 일본 선수들까지 직접 가르치며 느낀 것 들은 보다 깊은 야구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단순히 ‘일본 야구는 우리 보다 앞서 있다’는 겉핥기식 칼럼이 아닌 보다 색다른 시선으로의 접근을 해 보려 합니다. 서 코치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깨닫게 된 이야기 들을 여러분과 공유해 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