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김현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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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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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김현식 기자] 고(故) 가수 현미(본명 김명선)의 빈소가 차려졌다.
고인의 빈소는 7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실 1호에 마련됐다. 유족들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조문객을 받고 있다. 고인의 조카인 배우 한상진도 슬픔 속 빈소를 지키는 중이다. 한상진은 한때 현미의 아들과 부둥켜안고 오열하기도 했다.
가수 정훈희, 현숙, 하춘화, 쟈니리, 설운도 등 여러 가요계 동료들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윤석열 대통령,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가수 남진, 나훈아, 이미자 등은 근조 화환을 보내 추모에 동참했다.
하춘화는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선배님께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이어 그는 “가수로 데뷔한 6살 때부터 선배님과 함께 무대에 섰다. 저에게 ‘춘화야’ 하고 부르던 유일하신 분이자 든든하게 가요계를 지켜주시던 대선배님이 떠나셔서 너무 마음이 허전하다. 이 자리를 누가 메워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울러 하춘화는 “선배님은 남자로 태어나셨어야 할 정도로 활발하셨던 분”이라며 “건강도 의심할 필요가 없을 정도였기에 100살 이상은 사실 줄 알았다.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며 “선배님이 좋은 곳에 가셔서 하늘나라에서 편히 지내시길 바라겠다”고 말했다.
설운도는 “현미 누님은 저를 유난히 많이 아껴주셨던 분이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연락을 주셔서 축하해주시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늘 건강하게 사시면서 후배들의 귀감이 되셨던 분이다. 워낙 에너지가 넘치셔서 누님을 보기만 해도 힘이 나곤 했다”며 “노래 실력도 놀랄 정도로 좋으셔서 후배들에겐 롤모델 같은 분이셨다”고 덧붙였다. 설운도는 “현미 누님이 남긴 주옥 같은 히트곡들도 가슴에 남아 있다. 나이를 초월해 10대 소녀처럼 사시던 분인데, 비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 (사진=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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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현미는 지난 4일 향년 85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서울 용산구 이촌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중앙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숨을 거뒀다. 두 아들이 미국에서 지내고 있었던 터라 빈소 마련이 늦어졌다.
장례는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치러진다. 대한가수협회 감사인 가수 서수남이 장례위원장을 맡는다.
대한가수협회장인 가수 이자연은 “현미 선생님은 가요계의 큰 별”이라며 “고인께서 치열한 삶을 통해 불멸의 작품을 남기고 영면에 드는 이 시점에 작은 보답이라도 하고자 대한가수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국민의 애도와 추모하는 마음 담아 후배 가수들과 함께 장례 절차를 무사히 마치겠다”고 전했다. 장례위원장인 서수남은 “향후 협회 차원에서 후배 가수들이 출연하는 추모 공연을 여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인의 발인은 오는 11일 오전 10시 엄수 예정이며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발인 당일 오전 9시에는 영결식도 예정돼 있다. 코미디언 이용식이 사회를 맡는 가운데 가수 박상민과 알리가 추도사를, 이자연이 조사를 낭독한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현미는 한국전쟁 당시 1·4 후퇴 때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 무대에 오르며 연예 활동을 시작했고,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한 이후 ‘밤안개’, ‘보고 싶은 얼굴’, ‘떠날 때는 말 없이’, ‘몽땅 내 사랑’, ‘무작정 좋았어요’ 등 다수의 곡을 히트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