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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당구 PBA의 열렬한 팬이라는 5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지난주 열린 프로당구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 일정표를 보고 화를 참지 못했다. 결승전이 밤 11시에 시작된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고양 킨텍스에 PBA 전용구장까지 생겼다고 해서 결승전을 꼭 직관하고 싶었던 김씨는 고민끝에 그냥 TV로 시청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경기가 새벽 2시까지 이어져 끝까지 관전하지 못하고 잠들었단다.
김씨는 “아무리 프로야구 중계 시간과 겹친다고 해도 밤 11시에 경기를 시작하는 것은 너무 한 것 아닌가”라며 “팬들이 경기를 보라는 것인지, 보지 말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PBA 전용구장 첫 대회로 열린 ‘하나카드 PBA-LPBA 챔피언십’은 하비에르 팔라존(휴온스)과 백민주(크라운해태)가 남녀부 우승으로 마무리됐다. 두 선수는 전용구장인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의 1호 우승자로 기록됐다.
하지만 정작 많은 당구팬은 팔라존과 백민주가 우승컵을 들고 기뻐하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 결승전이 밤 12시를 훌쩍 넘어 새벽 2시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시상식, 기념촬영까지 감안하면 거의 새벽 3시에나 모든 일정이 마무리됐다.
프로당구 결승전이 밤 11시에 열려 새벽 2시에 끝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은 프로야구 중계시간과 겹치지 않으려는 중계방송사의 요구 때문이다.
야구는 연장전 등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늦어도 오후 10시 안팎에는 끝난다. 하지만 하이라이트 방송까지 진행한 뒤 프로당구 결승전 중계를 내보내려다 보니 새벽까지 경기가 열리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아무리 열혈 팬이라고 해도 밤 늦은 시간에, 그것도 평일에 경기를 보는 것은 무리다. 당구팬들을 티끌만큼이라도 배려했다면 이런 스케줄은 나올 리 없었다. 야구 중계와 겹치는 것이 문제라면 야구가 열리기 전 낮 시간에 결승전을 개최하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PBA는 그 같은 운영의 유연함조차 살리지도 못했다.
선수들도 불만을 갖기는 마찬가지다. 밤늦게 시작해 새벽까지 결승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경기가 끝난 뒤 우승자도, 준우승자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준우승자인 루피 체넷(튀르키예)은 당일 “늦은 시간에 열린 풀세트 결승전이 매우 힘들어 집중력을 찾기가 힘들었다”고 직접적으로 아쉬움을 털어놓기도 했다.
PBA는 출범 초기부터 ‘가족스포츠, 대중스포츠’를 목표로 내걸었다. 하지만 수년째 밤늦은 시간 경기를 줄곧 고수하면서 점점 ‘보는 사람만 보는 스포츠’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보려면 보고, 싫으면 말라는 식의 운영이 이어진다면 팬들은 외면할 수밖에 없다. 모처럼 찾아온 대한민국 당구 열풍에도 찬물을 끼얹는 행태다.
PBA는 지난달 22일 프로당구 전용구장인 ‘고양 킨텍스 PBA 스타디움’을 개장하고 전용구장 시대를 열었다. 전용구장 내 약 200여석의 관중석을 마련했고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티켓 판매도 실시했다.
하지만 늦은 밤에 열리는 경기를 현장에서 관전한 일반 당구팬들은 거의 없었다. 그걸 기대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결승전은 팀 동료나 관계자, 가족 등 지인들로 관중석이 채워졌다. PBA가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팬들에 대한 배려부터 원점에서 다시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