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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거센 파도를 향해, 때로는 눈보라 몰아치는 숲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민병훈(54) 감독. 그는 자연을 기록하는 영화감독으로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에서 공부하고 지난 1998년 데뷔작인 ‘벌이 날다’가 그리스 영화제에서 은상을 수상하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바 있다.
영화감독으로 30년 가까이 극영화에 몰두했던 그가 5년 전, 돌연 제주로 내려온 이유는 무엇일까. 시나리오 작가이자 아내였던 안은미 씨의 폐암 선고가 가장 큰 이유였지만 관객 수로 성패를 결정짓는 상업영화 시스템에서 그 역시 더 이상 영화를 만드는 기쁨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바람의 자리에서, 아내가 거닐던 숲에서, 혹은 눈보라가 치는 나무 아래서 민 감독은 아들과 둘이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라는 아내와의 약속을 4년째 이어가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깊은 애도의 과정이 자연의 내면을 담은 민 감독의 새로운 영화가 됐다면, 올해 열한 살이 된 아들, 시우가 슬픔을 덜어내는 방법은 자신의 마음을 자연에 투영하여 쓴 시였다.
이처럼 엄마, 아내의 부재를 견뎌내는 부자의 일상은 다큐멘터리 영화 ‘약속’으로 제작되고 있고, 시우의 그리움이 담긴 시는 얼마 전 책으로 출간됐다.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숲에서 엄마가 가장 좋아했던 엄마 나무 아래서 시우는 아플 때 호 불어주는 바람과 쓰담쓰담 해주는 숲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덧 11살 초등학생으로 성장했다.
’자연의 철학자들-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리라’ 편은 오는 27일 오후 7시40분에 KBS1에서 방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