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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자칫 이 빅 이닝은 반대로 SK에 기운을 넘겨줄 뻔한 위기에서 출발했다. 작전 실패로 애써 잡은 기회를 놓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LG의 빅 이닝은 1사 후 시작됐다. 선두타자 이병규가 중전 안타로 출루했지만 도루 실패로 아웃됐기 때문이다.
물론 벨의 단독 도루는 아니었다. 벤치에선 히트 앤드 런 사인이 나왔지만 타석의 채은성이 SK 선발 고효준의 공에 손을 대지 못한 채 헛스윙 하며 모든 것이 흐트러지고 말았다.
여기서 부터가 채은성의 가치가 도드라지는 대목이다.
그런 투수를 상대로 히트 앤드 런 사인을 낸다는 건 매우 위험 천만한 일이다. 어디로 공이 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SK 전력분석팀장 시절, 고효준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김정준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고효준은 특히 주자가 1루에 나가면 초구에 볼 비율이 너무 높았다. 카운트를 유리하게 가져가야 할 상황은 분명했지만 워낙 초구 볼이 많아 아예 볼 카운트 1-0을 기준으로 전략을 짰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 고효준이 던진 공은 채은성의 몸쪽 발목 높이로 들어왔다. 도저히 칠 수 없는 공이었다. 결국 채은성의 헛스윙과 이병규의 도루자가 잇달아 일어났다.
보통의 신인급 선수라면 이 상황에서 머리가 하애졌을 것이다. 경기 초반, 중요한 찬스에서 작전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스스로 무너질 확률이 높았다.
채은성은 달랐다. 이유가 무엇이건 자신이 공에 손을 대지도 못하며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침착하게 고효준의 공을 골라냈고, 기어코 볼넷으로 출루했다.
결국 채은성의 담대함은 고효준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여기에 알쏭달쏭한 주심의 스트라이크 판정까지 더해지며 완전 붕괴에 이르게 된 것이다.
양상문 LG 감독은 채은성에 대해 “지도자가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한 바 있다. 강한 멘탈의 소유자라는 의미다. 쉽게 기가 죽거나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스타일의 선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채은성은 그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LG에 모처럼 욕심내 볼 만한 선수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