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15년' 정우성이 후회하는 일은?

  • 등록 2009-10-19 오후 3:24:11

    수정 2009-10-19 오후 4:05:22

▲ 정우성(사진=한대욱 기자)

[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지난 8일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다섯 번째 멜로영화 ‘호우시절’은 이전 그의 작품과 달리 사랑의 시작을 담은 영화다.

시인을 꿈꿨다가 평범한 샐러리맨이 된 동하(정우성 분)는 미국 유학시절 사귀었던 중국 처자 메이(고원원 분)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중국 출장길이 사뭇 설렌다. 그리고 그 막연한 설렘은 현실이 된다. 쓰촨성 두보초당에서 관광안내원으로 일하고 있는 메이를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다.

정우성은 동하를 연기하며 '허진호 식 멜로'가 쉽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평소 그가 했던 연기와 다른 일상적인 연기를 해야 해서다. 그는 한 시대 청춘의 아이콘 이었거나(비트) 긴 창을 휘두르며 공주를 지키던 무인(무사와 중천) 혹은 만주벌판을 누비던 총잡이(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 극적인 캐릭터를 소화했었다.

하지만 허진호 감독은 정우성에게 움직임이 큰 액션보다 옛사랑을 다시 만나 소용돌이치는 감정의 진폭을 담아내길 바랐다. 촬영할 때는 어려웠지만 지나고 보니 그 기간이 정우성에게는 ‘호우시절’로 남았다.

-허진호 감독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에 처음 캐스팅 제의가 왔었다고 하던데?

▲ ‘8월의 크리스마스’의 시나리오를 먼저 받았다. 시나리오는 너무 좋은데, 읽는 것 자체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정작 제가 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제가 연기를 한다면 시나리오의 원래 분위기가 변형될 것 같아 싫었다. 제가 출연했다면 지금의 ‘8월의 크리스마스’와 다른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왔을 수도 있지만 어찌 되었건 한석규 선배와 심은하의 ‘8월의 크리스마스’가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완벽한 영화냐?

-오랜 인연의 허 감독이지만 정작 감독의 연출 스타일에 초반에 고생했다고 들었다.

▲ 우선 촬영기간이 워낙 짧았다. 중국에서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영화를 찍고 왔다. 게다가 허 감독은 저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영화를 찍었다. 가령 저는 짧은 커트 안에서 빠르게 동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영화를 많이 찍었지만 허 감독은 달랐다. 허 감독은 인물과 인물사이에 체류하고 있는 감정의 풍경들을 담으려 했다. 그래서 롱테이크가 많았고 배우들에게 끊임없이 물음표를 던져놓았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허 감독은 역시 고수였다. 게다가 그간 극적인 캐릭터를 자주 하다가 일상적인 샐러리맨 연기를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1994년 '구미호' 데뷔 후 20대 초반부터 배우로, 톱스타로 살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동하란 인물을 연기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 그렇다. 우선 동하와 저는 교집합을 찾기가 참 힘들었다. 일상에 대한 갈증이 있지만 평범한 일상을 살아갈 수 없는 게 배우다. 그래서 일상을 다룬 시나리오를 볼 때 더 하고 싶다는 간절한 욕구도 있었다. 그런 갈증이 ‘호우시절’을 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연기를 하면서 참 공통점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컨대 출장비 정산을 하고 식대를 더 올려서 작성하는 것, 샐러리맨의 상황. 중국 지사장과의 관계 같은 것은 저로서는 처음 경험해보는 샐러리맨의 세계였다. 또한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면 영화 속 동하처럼 주저하지도 않는다. 저 같으면 똑 부러지게 그 관계를 발전시키거나 아니거나 했을 것이다.

-그래도 ‘호우시절’ 속 동하의 모습에는 일상의 정우성의 표정도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 영화를 보고 나니 일상의 평범한 때의 표정이 화면에 많이 나왔다. 가령 호텔 창문에서 멍하니 풍경을 바라볼 때의 표정은 영락없이 저의 평상시 모습이다. 그래서였는지 촬영을 마치고 보니 연기를 한다는 생각 보다는 메이와 교감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 영화 호우시절에서 호흡을 맞춘 정우성과 고원원

-동하는 유학시절 만난 던 메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된다. 동하처럼 옛 여자친구가 그립지는 않은가?

▲ 청담동 어느 빌라에 가면 내 옛 여자친구가 살고 있다(웃음). 사실 옛 여자친구에 대한 그리움보다 그냥 외롭고 허전한 생각이 들 때가 올해 들어 유독 많다. 특히 약속이 없는 일요일 오후에는 어디로 도망갈 곳이 없으니까 더욱 그렇다. 집에 앉아 멍하니 있다 보면 옆의 누군가가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시사회 당시 상대역인 고원원이 남자 친구가 있다는 것에 많이 실망했다는 말을 했었다.

▲ 가장 싫어하는 여자가 ‘척’하는 여자다. 예쁜 척 하거나 무언가 허세를 떠는 여자가 싫다. 그런데 고원원은 그런 척을 하지 않았다. 처음 대면한 이후 인격적으로 잘 생긴 사람이란 느낌이 왔다. 좋은 부모님 아래서 잘 자란 그런 사람의 느낌. 그래서 동하처럼 실제로 설레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연기를 한다는 생각보다 그녀와 교감을 나눈다는 생각으로 촬영에 임했다. 남자친구가 있다는 말에 아쉬웠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이성을 만날 시기인 것 같다. 어떤 여자가 이상형이냐?

▲ 이제는 어떤 여성분과 결혼을 해야 할 지 대충 감이 잡힌다. 가족과 부모님과 어울릴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거기에 딜레마가 있다. 아직까지 제가 원하는 이상형이 20대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바라는 신체적 매력에 중심이 가 있다는 점이다. 정서적이고 지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쉽지 않다. 어쨌든 이상형은 평범한 얼굴이지만 꾸미기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는 매력이 있는 여성이다.

-영화 제목인 ‘호우시절’은 때 마침 비가 내리는 좋은 시기라는 두보의 시에서 따왔다. 정우성의 호우시절은 언제였던 것 같나?

▲ 지금이 ‘호우시절’ 인 것 같다. 허 감독의 ‘호우시절’에 출연 하면서 지금 이 나이에 필요한 캐릭터를 연기할 수 있었다. 그간 장르적이고 극적인 캐릭터를 해오다 일상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 영화 속 인물과 내 자신의 일상과 어느 정도 밀착해있는 느낌도 좋았고. 지난해 '놈,놈,놈’이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도 흐뭇했던 일이고.

▲ 정우성(사진=한대욱 기자)

-그럼 과거에 아쉬웠던 점은 없나?

▲ ‘비트’가 흥행하고 난 이후에도 내 스스로 배우라는 걸 자각을 못했다. 영화는 찍고 있지만 더 배우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에 대해, 이 길을 걸어가야 한다는 것에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미 그 당시 나는 배우였다. 그때 그 사실을 자각했다면, 좀 더 많은 청춘멜로에 출연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만 할 수 있는 역할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이 아쉽다.

-영화 속 메이가 동하에게 “유학시절에 너는 모든 여자들에게 잘 해줘서 나랑 잘 안됐었다”는 대사가 있다. 실제 정우성은 어떤가? 한 여자에게 잘 해주는 편인가? 아니면?

▲ 내가 딱 그 대사 스타일이다. 감독이 내 머릿속에 있나 싶었다. 실제로 내가 그렇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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