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빠서' 더 슬픈 제주의 완패

  • 등록 2009-09-13 오후 7:55:33

    수정 2009-09-13 오후 7:55:33

▲ 제주유나이티드 선수단

[이데일리 SPN 송지훈기자] 제주유나이티드(감독 알툴 베르날데스)가 K리그 역대 통산 최다 실점을 허용하며 안방에서 포항스틸러스(감독 세르지오 파리아스)에 치욕스런 패배를 당했다.

제주는 13일 오후3시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9 K리그 23라운드 경기서 '강철군단' 포항에 무려 8골을 헌납하며 1-8로 패해 시즌 통산 9패(7승6무)째를 당했다. 승점은 27점으로 제자리 걸음을 했고, 최근 6경기서 1승(2무3패)에 그치는 부진이 이어졌다.

경기의 흐름은 후반 들어 갈렸다. 경기 시작 후 9분만에 김태슈와 유창현에게 연속골을 내주며 0-2로 전반을 마친 제주는 후반11분 포항 공격수 스테보에게 3번째 실점을 허용한 이후부터 급속도로 무너졌다.

제주는 후반15분과 후반23분 유창현과 스테보에게 추가로 실점을 했고, 후반31분과 후반35분에는 최효진과 김태수에게 재차 골문을 열어줬다. 경기 종료 직전에는 포항 미드필더 황진성이 골 에어리어 내 왼쪽 지역에서 오른발 슈팅으로 팀의 8번째 골을 성공시켜 '골 폭풍'의 대미를 장식했다.

제주 입장에서는 U-20 대표팀에 차출된 플레이메이커 구자철과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중앙미드필더 오승범 등 핵심 허리자원의 공백이 더 없이 아쉬운 경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제주의 패인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포항과의 경기에 나선 제주 선수들의 몸은 전반적으로 둔했고, 무거웠다. 크고 작은 실수도 쉼 없이 이어졌다. 기술축구를 강조하는 '알툴호'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장면들이 줄을 이었다.

'집단 슬럼프'의 원인은 경기 종료 직후 밝혀졌다. 제주의 한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경기 당일 제주 선수들이 구단 행사 두 가지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집중력 유지에 어려움을 겪은 것 같다"는 귀띔을 들려줬다.

이날 제주는 오후1시30분부터 서귀포시 강정동 소재 구단 클럽하우스에서 전용구장 개장 행사를 진행했다. 김태환 제주도지사, 신헌철 제주 구단주 등을 비롯해 제주 지역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제주 선수단도 행사에 참여해 자리를 빛냈다. 이에 앞서 오전 11시 경에는 선수단과 코칭스태프 전원이 클럽하우스에서 전용구장 완공을 기념하는 고사도 지냈다.

포항과의 홈 경기 시작 시간이 3시였으니 이날 제주의 출전 선수들은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적 여유조차 갖지 못한 채 그라운드에 오른 셈이다.

물론 이제껏 제대로 된 훈련장 없이 도내 이곳 저곳을 옮겨다니며 '메뚜기 훈련'을 했던 제주 선수단에게 '전용구장 개장'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발자취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집중력이 최고조에 올라 있어야 할 시간대에 선수단으로 하여금 경기와 상관 없는 행사를 소화하도록 결정한 구단 측의 방침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다.

경기 종료 직후 제주 선수단의 상황을 전해 들은 포항의 한 선수는 "킥오프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와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일에 마음을 쓴다면 승리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며 "오늘 제주 선수들의 플레이는 앞선 경기와 견줘 눈에 띄게 부진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전용구장 개장 행사를 진행하며 한껏 부풀어 오른 제주 관계자들의 기대감과 감동이 절망과 탄식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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