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에서 장수는 군주를 도와 국가를 지탱하는 사람을 칭한다. 장수 안에서도 급이 나뉘고, 수행해야 하는 임무도 다르다. 하지만 신분의 고하는 있어도 중요성의 차이는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능동성이다. 군주의 지시를 있는 그대로 병사와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장수의 역할이 아니다.
군주의 그릇된 판단을 바로잡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수동적 역할에 그친다. 무릇 장수라면 국가의 재정과 전력의 상태를 고려해 창조적으로 군대를 이끌어야 한다. 손자는 "장수의 용병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했다.
군주는 아무리 능력이 빼어나도 모든 것을 통제할 순 없다. 참모 역할을 맡고 있는 장수들이 자신의 위치에 맞는 적절한 운영으로 뒤를 받혀줄 때 국가는 비로소 강력한 모습을 갖춰갈 수 있는 것이다.
SK 와이번스는 김성근 감독의 '원맨 팀'이라는 이미지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만큼 김 감독의 영향력이 지대하게 팀 전체에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홀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순 없다. 그의 철학을 이해하고 이기는 길로 가는 방법을 이해하고 있는 참모들이 있기에 진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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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식일이면 매번 제출되는 특타 및 보강 훈련 명단을 짜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간혹 김 감독의 간택(?)을 받는 선수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그의 손에서 결정된다.
선수들을 전체적으로 보듬는 것 역시 그의 몫이다. 이 수석의 넘치는 파이팅은 SK 선수들에게 건전한 에너지로 전달된다.
흥미로운 것은 그가 처음부터 자상 모드를 택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에서 돌아와 처음 부임했을 때 그는 별명대로 '헐크'의 두 얼굴을 갖고 있었다. 친절하고 자상했지만 실수나 나태에 대해선 더 없이 차가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 수록 그런 모습이 줄어들었다. 팀 내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인지했기 때문이다. 마냥 좋은 사람일 순 없지만 숨통을 틔울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그 역시 변해갔다.
이홍범 이광길 등 김 감독과 오래도록 한솥밥을 먹은 코치들도 빼놓을 수 없다. 그들은 감독의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장수들이다.
언제 어떤 준비가 되어 있어야 '김성근 감독의 팀'이 원활하게 돌아가는지를 잘 알고 있다. 때론 감독의 생각보다 먼저 움직이기도 하고, 감독이 불호령을 내린 이유를 선수들에게 설명해 주는 것도 이들의 장기다.
홍남일 트레이닝 코치는 김 감독에게 가장 혼이 많이 나는 코치 중 하나다. 부상 선수 관리에 공을 많이 들이는 김 감독의 특성 탓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 신뢰 받는 코치이기도 하다. 부상 선수들을 위해서라면 사생화을 모두 반납하고 매달리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시리즈 6화 '승리의 절실함, 기적을 만들다'에서 언급했 듯, 홍 코치는 지난 2010시즌 재활 캠프를 이끈 5개월 동안 연말 연시도 반납한 채 훈련을 이끌며 수술 선수들의 조기 복귀를 성공시킨 공신이다.
비단 코치들만의 몫이 아니다. 그라운드를 직접 뛰는 선수들 중에서도 중심이 되는 선수들이 있다. 그들의 자율적인 리딩은 SK가 흔들림 없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다.
포수 박경완은 지난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유독 후배들에게 지시 사항이 많았다. 미팅도 수시로 소집했다. 좀처럼 싫은 소리 않던 그다. 하지만 그때만은 달랐다. 세부 훈련의 이유를 설명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한 보충을 요구했다.
늘 움직이지 않던 산과 같던 선배의 변신은 후배들에게 더 없이 좋은 자극제였다.
김재현은 언제나 선수들의 가장 앞에 선 주장이었다. 구단은 물론 김성근 감독에게도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주저 없이 앞장섰다.
반대로 선수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가장 솔선 수범하며 풀어간 주장이기도 했다. 2년간 한솥밥을 먹은 카도쿠라(현 삼성)은 "김재현은 타석에서 뭔가 기대를 품게하는 선수"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선수들이 야구장 안,팎에서 가장 의지가 되는 선수였던 것이다.
정근우와 김강민은 최일선에서 뛰는 장교와 같다. 정근우는 내야, 김강민은 외야 수비의 중심이다. 그들의 움직임에 따라 SK의 수비는 그 형태를 달리한다.
둘은 좋은 수비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비결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 또한 같다. "내 쪽으로 오는 모든 공을 잡겠다는 생각만 한다"는 것이다. 그런 투혼은 둘을 최고의 수비수로 성장시켰다. 또한 동료들에게 좋은 교재가 됐다.
정근우는 후배들의 플레이에 대한 지적도 담당한다. 결과적으로는 아웃이 됐더라도 베이스 커버가 조금 늦는 등 안이한 플레이가 나오면 장난기 넘치던 그의 얼굴은 가장 무서운 선생님의 그것으로 변한다. 코치들의 지적이 나오기 전 자체적으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자생력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자율적이고 능동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이다. 시킨 것을 따라하는 단계를 넘어서 각자 위치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이기기 위해 희생하거나 찾아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하며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분위기다.
김정준 코치는 "SK 야구의 모든 것은 '유기적'이라는 단어 아래 놓여 있다.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움직임 하나가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하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코치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 실제 경기에서 게임을 조율하고 풀어가주는 선수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성공도 거두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참모의 존재야 말로 SK의 진짜 힘"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