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남아공) 붉은악마의 열정, 부부젤라도 눌렀다

남아공월드컵, 한국축구 결산 #3
  • 등록 2010-06-27 오전 8:28:58

    수정 2010-06-27 오전 11:34:27

▲ 붉은악마

[남아공 = 이데일리 SPN 송지훈 기자] 남아공월드컵에 대해 말하고자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 바로 부부젤라(Vuvuzela)다. 남아공 원주민들이 사냥 또는 전쟁에 나설 때 짐승의 뿔로 만든 나팔을 분 것에서 유래한 부부젤라는 매 경기 빠짐 없이 등장해 TV로 월드컵을 즐기는 전 세계 축구팬들에게 극심한 '청각 자극'을 제공했다.

항공기가 이륙할 때 나는 소리와 맞먹는 부부젤라 수천개의 소음(120데시벨)은 경기장을 찾은 각국 서포터스의 응원을 무력화시키는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열성적이기로 소문난 유럽의 축구팬들조차 부부젤라의 압도적인 소리에 질려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2002한일월드컵 당시 전국을 붉은 물결로 가득 채웠던 한국의 축구팬들은 역시나 달랐다. 조별리그 상대국인 그리스,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등과 견줘 수적으로는 열세를 면치 못했지만 응원의 질은 한 수 위였다. 선수들의 조별리그 성적은 2위였지만, 응원 성적은 단연 1위였다.

매 경기 한국의 축구팬들은 독특하면서도 열정적인 응원으로 해외 언론매체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기장 밖에서부터 사물놀이로 눈길을 끌었고 임금님, 왕비, 장군 등의 전통복장을 착용한 축구팬들은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됐다. 매 경기 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관중석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는 한국 축구팬들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매김했다.

90분 내내 경기 내용과 상관 없이 이뤄지는 붉은악마들의 열정적인 응원에 동화된 남아공 축구팬들이 부부젤라로 한국 응원의 박자를 맞춰주는 이채로운 장면도 연출됐다.

1-4로 무너진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 당시 흔들림 없이 응원전을 펼치는 한국 축구팬들의 모습은 남아공 현지 방송국이 '대표팀을 뛰어넘어 축구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라 평가했을 정도로 돋보였다.

한국축구대표팀이 8강 진출 문턱에서 좌절한 우루과이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부젤라의 소음에 밀리지 않기 위해 꽹과리, 북, 징 등 전통 악기를 동원한 우리 축구팬들은 득점과 실점 여부에 상관 없이 뜨거운 응원으로 선수들을 응원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비도, 우루과이의 추가골도 팬들의 열정을 식히지 못했다.

매번 우리 나라가 월드컵 무대에 나설 때마다 현장을 찾아 '12번째 선수' 역할을 담당하는 붉은 악마와 축구팬들은 어느덧 한국축구의 소중한 자산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이제 남은 과제는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우리 선수들이 그에 어울리는 성적으로 보답하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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