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심차게 붓을 꺼내들고 굵직한 획을 긋기 위해 유럽대륙에 우뚝 서있는 두 주인공 덕분에 유럽대항전을 마치 내 팀 응원하듯 바라보는 팬들이 적잖다. 2008년 4월30일(챔스 4강 2차전)과 5월2일(UEFA컵 4강 2차전/이하 한국시간). 하루의 공백을 두고 징검다리로 이어진 이 날들이 한국축구사의 의미 있는 이정표가 될 수 있다.
유럽 클럽대항전의 양대산맥인 챔피언스리그와 UEFA컵 4강에 나란히 대한민국 선수가 활약한다는 자체가 놀랍고, 기특하고,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다. 팔이 안으로 굽는 것이야 당연지사고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커리어 평생 또 언제 찾아올지 보장할 수도 없는 기회인데, 내친걸음 동시에 결승에 오르는 기쁨까지 선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맨유나 제니트 모두 적진에서 승점을 챙겨 홈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일단 고무적이다. 맨유는 바르셀로나의 안방 누 캄프에서 열린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누군가는 C.호날두의 PK 실축이 아프다 말하지만, 전체적으로 일방적이다 싶을 만큼 바르셀로나의 창끝이 무서웠으니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일부에서는 당시 박지성의 활약이 미미했다고 폄하했으나 안정에 방점을 찍었던 퍼거슨 감독의 의중을 감안할 때, 분명 잘했다. 올드 트래퍼드로 바르셀로나를 불러들인 맨유는 이제 홈팬들과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단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다.
긁어 부스럼 같은 걱정이나 1차전에서 득점을 올리지 못한 채 무승부로 끝낸 것은 못내 아쉽다. 원정다득점 원칙이 적용되는 대회 성격을 감안할 때, 2차전에서 골을 허용한다면 비겨도 패한다. 바르샤급 공격력이라면, 한 골이 대수는 아닐 터다.
제니트의 상황은 더 좋다. 상대가 분데스리가의 거함 바이에른 뮌헨이다. 챔피언스리그 무대에 어울릴법한 매머드 클럽과 마주하고 있는데, 그런데 이 용감무쌍한 ‘하룻강아지’가 일단 코를 물어버리는 데까지 성공했다.
독일에서 열린 1차전에서 제니트는 F.리베리에게 선제골을 허용하고 루시우에게 또 골을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1-1로 비겼다. 루시우의 헤딩골이 고맙게도 자책골이었다. 결국 어웨이 경기에서 골을 넣고 비겼으니 맨유보다 나은 상황이다.
물론 뮌헨을 상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으나, 어쨌든 0-0 무승부만 거두어도 결승진출이다. 이런 상황이니 기세만큼은 누구와 견줘도 모자람 없는 제니트다. 2007년 클럽 사상 최초로 러시아 리그를 제패했던 변방의 제니트가 UEFA컵 4강까지 내달릴 것이라 예상한 이는 드물었다.
결국 부담은 ‘골리앗’ 뮌헨이 클 수밖에 없다. ‘다윗’ 제니트 입장에서는 이미 8강에서 분데스리가 클럽 바이에르 레버쿠젠을 대파했던(1차전/4-1승) 기억도 가지고 있으니 또 든든할 것이다.
이제 주사위는 넘어갔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을 이끌었던 제니트의 아드보카트 감독이 호쾌하게 ‘김동진 카드’를 빼들 수만 있다면, 그래서 동방에서 온 매서운 왼쪽날개가 바이에른 뮌헨에게 비수를 꽂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 없겠다.
차범근 감독이 레버쿠젠 소속으로 두 번째 UEFA컵 정상에 오른 때가 1987-88시즌이다. 딱 20년의 터울을 두고 이제 김동진이 도전한다. 희망처럼 말했으나 그저 헛된 희망은 아닐 것이다.
박지성이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오르고 김동진이 UEFA컵을 들어 올리는 그림, 충분히 가능하다.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까지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부터는 진짜 ‘땀’과 ‘신’만이 관여할 일이다./<베스트일레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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