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은 지금,차원이 다른 싸움을 하고 있다

  • 등록 2014-06-19 오후 12:40:38

    수정 2014-06-19 오후 12:42:05

왼쪽은 이승엽과 문자 대회 내용. 사진=삼성 라이온즈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지난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국민타자’ 이승엽에게 응원 삼아 문자를 남겼다. 요즘 한참 유행하고 있는 ‘비더레전드’의 안타 칠 후보로 당신을 꼽았다는 내용이었다. 잠시 후 유쾌한 이모티콘과 함께 ‘열심히 해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날 이승엽은 안타를 하나도 치지 못했다. 괜한 부담만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경기 후 또 한 번 재미있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 밑엔 ‘죽여주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관련 내용이 정리된 베이스볼S 블로그 http://blog.naver.com/baseball_sbs)

지난해의 이승엽에게선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2년 전, 한국으로 돌아왔을 떄도 마찬가지였다.

이승엽은 실패에 민감해져 있었다. 복귀 첫 해인 2012년엔 한국시리즈 우승과 MVP를 차지한 뒤에야 “이제 겨우 한 숨 돌렸다”고 했던 그다. 한국 무대에서 최악의 부진을 겪었던 지난해엔 스스로를 더욱 옭죄어 들어갔다. 자신의 스타일을 어떻게든 지켜보려 애써봤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다. 경기 결과가 좋지 못한 날 웃는 모습을 본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그런 이승엽이 달라졌다. 실패를 쿨하게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고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자신을 객관적 입장에서 바라보며 생긴 변화다.

이승엽은 올 시즌 타격 준비 자세를 수정했다. 배트를 뒤로 눕혀 미리 발사 자세를 갖추는 방식으로 바꿨다. 이제 전성기 시절만큼의 스피드를 낼 수 없다는 객관적 결론에 따른 변화였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불패라 했다. 이 보다 더 높은 경지가 자신의 객관화다. 마치 다른 사람의 일 처럼 자신의 일을 바라보면 가장 정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된다.

야구도 마찬가지다. 타석에 선 타자로서 투수를 이기는 것이 중요하지만 한 걸음 떨어져서 그 대결을 지켜보면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가 더 잘 보이게 된다. 직접 바둑을 두는 사람 보다 훈수꾼의 생각이 더 빠르고 정확한 것과 같은 이치다.

이승엽은 지바 롯데 시절 김성근 현 고양원더스 감독으로부터 늘 같은 말을 들었다. “타자가 투수를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봐야한다. 넌 지금 투수를 올려다 보고 있다. ‘와, 대단하다, 잘던진다’며 감탄하고 있다. 싸우기도 전에 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 걸음 물러나서 승부를 지켜보라. 그럼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이승엽이 그렇다. 그는 18일 문학 SK전서 연장 10회초 결승 솔로포를 때려낸 뒤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홈런을 친다는 생각으로 나갔다. 연장전이니까 안타보단 꼭 홈런을 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성기 시절의 멘트가 떠오르는 소감이었다. 이승엽은 자신의 전성기를 “홈런을 꼭 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홈런 칠 가능성이 높았던 때”라고 말하곤 한다. 투수의 위에서 싸움을 하고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하루 전인 17일, 3연타석 홈런을 칠 때도 그는 무서우리만치 객관적으로 자신을 관조했다. 첫 타석에서 직구로 홈런을 치자, 다음 타석에선 커브를 노렸다. 홈런성 파울이 되자 곧바로 다시 직구를 받아쳐 또 홈런을 만들었다.

‘파울 홈런 뒤 삼진’은 야구의 진리다. 파울 홈런이 나오면 배터리는 볼배합을 바꾼다. 하지만 타자는 그 짜릿한 손 맛을 잊지 못해 계속 파울 홈런 친 그 공을 기다린다.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니 결과가 좋아질 수 없다. 이승엽의 3연타석 홈런은 그래서 더 놀라웠다.

이승엽의 부활은 기술적 발전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는 정신적으로 더 강해지고 커졌다. 그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됐다는 믿음을 갖게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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