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킹’ 출연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유학 생활을 보낸 뒤 성악가의 길을 걸어온 김호중. 그는 ‘미스터트롯’을 통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며 자신의 영화 같은 삶을 더욱 다이내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최종 4위에 오르며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가수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지난달 27일 이데일리와 만난 김호중은 “방황을 끝내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사는 저의 모습을 보고 많은 분이 용기와 희망을 가지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
△녹화 때 못했던 휴식을 취하며 인터뷰 일정 등을 소화 중이다. 운동도 조금씩 하면서 지낸다. 마음에 여유도 생겼다. ‘미스터트롯’ 경연에 임할 때는 주어진 시간 안에 미션곡을 편곡해서 제 스타일대로 소화해야 했기에 노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 아무래도 지금은 경연이 끝나서 마음이 편하다. (미소).
-성악가로 활동하다가 ‘미스터트롯’ 지원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
△가장 좋아하는 성악가가 루치아노 파바로티다. 파바로티는 오페라 장르만 한 게 아니라 마이클 볼튼 머라이어 캐리, 스팅 등 세계적 아티스트와도 작업했다. 저도 역시 그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해왔다. 실제로 2013년 디지털 싱글을 냈을 때 1절은 발라드 느낌으로 부르기도 했었고, 래퍼와 협업한 적도 있다. 조금 더 대중성을 갖추고 싶다는 고민을 계속해오던 와중에 우연히 보게 된 게 ‘미스트롯’이었다. 아나운서나 개그우먼 같은 분들이 트롯 장르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공감이 됐고, 혹시 남자 편이 만들어진다면 나도 지원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미스터트롯’ 공고가 나서 바로 신청을 하게 됐다.
-평소 트롯 장르에 대한 관심은 높은 편이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 듣는 걸 좋아했고, 장르를 따지지 않고 많은 음악을 들었다. 그렇다 보니 제 또래들보다 흘러간 옛 가요나 포크 음악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런 부분이 ‘미스터트롯’ 경연에 임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생각이다.
-트롯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어떤 준비 과정을 거쳤는지도 궁금한데.
△되게 재밌었다. 원래 도전하고 모험하는 걸 즐긴다. 독일에서 유학하던 시절에도 혼자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기도 했다. 물론, 내가 과연 낯선 무대에서 노래를 잘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좋은 곡은 곡들을 만난 덕분에 편안하게 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팀 미션이 낯선 경험이었을 텐데.
△쉽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지만 덕분에 추억이 많이 쌓였다. 서로 경쟁자라는 생각보다는 ‘우린 진짜 팀이다’라는 생각이 강했고, 여러 가수 분들과 함께하며 좋은 결과를 이뤄내기도 했기 때문이다.
-기억에 남는 심사평이 있나.
△‘태클을 걸지마’를 불렀을 때 원곡자인 진성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녹화 당일까지 진성 선생님이 출연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그런데 촬영을 몇 시간 앞두고 진성 선생님이 오신 거다. 너무 부담되고 곡을 바꿔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노래를 듣고 ‘너무 좋다’, ‘앞으로 김호중이 어느 무대에 가서든 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겠다’는 말씀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조영수 작곡가님이 ‘음악으로도, 삶적으로도 호중 씨의 멘토가 되어주고 싶다’고 말씀해주신 것도 기억에 남는다.
-최종 4위로 프로그램을 마무리 했다. 이렇게 좋은 성과를 얻게 될 거라고 예상했나.
△아무래도 경연 형식이다 보니 성적에 대한 욕심이 없진 않았다. 그런데 갈수록 순위에 연연하기보다는 즐기게 되더라. 그만큼 매번 새롭게 주어지는 미션이 즐겁고 재밌었다. 경연 말미에는 이미 팬클럽 ‘트바로티’ 회원 분들의 마음 속에 있는 트로피를 얻은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감사한 일이니 성적은 중요치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결승전에서는 700만명 이상이 문자 투표에 참여했다. 당시 현장 반응은 어땠나.
△참가자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까지 모두 깜짝 놀랐다. 전산 시스템이 마비되었다는 게 이해가 되는 투표 수였다. 앞으로 음악을 하면서 700만여 명의 관심을 받는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톱7’에 오른 이들과 함께 1년 반 동안 프로젝트 활동을 펼치게 되었는데.
△7명이 모두 각자 다른 무기와 컬러를 지니고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같다는 생각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음악을 하면서 이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을 것 같다는 생가도 든다. 그만큼 장점이 많은 분과 함께하게 되어 기대된다.
-무지개 얘기가 나온김에 김호중의 색깔에 대해 얘기해보자면.
△아무래도 성악가 출신이라는 점이 제가 가진 색깔의 가장 큰 특징이지 않나 싶다. 앞으로 김호중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의 장점을 잘 살려나가고 싶고, 편안하고 좋은 메시지가 담긴 곡들을 많이 부르고 싶다. 목표 중 하나인 앨범을 작업하게 되면, 제 옷에 딱 맞게끔 완성해내고 싶다.
-앨범을 내게 되면 다양한 장르의 곡을 담게 되는 건가.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노래하는 사람 김호중’이 되는 게 꿈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백호 선생님을 존경한다. 특정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낭만 가객’이시지 않나. 몇년 전 선생님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한 관객분께서 선생님께 ‘어렸을 적에는 아버지의 가수셨는데, 지금은 제 가수가 되어 계시네요’라는 말을 하셨는데 가슴을 ‘꽝’ 하고 치더라. 그때 나도 선생님처럼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가수가 되어 훗날 저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 어떤 비싼 다이아몬드를 품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지 않을까.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다. 실제 본인의 이야기가 영화 ‘파파로티’로 만들어지기도 했었고.
△하하. ‘파파로티’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는 SNS 메시지를 많이 받아서 뿌듯함과 보람을 느꼈다. 자신감과 용기를 잃고 살아가는 분들에게 ‘김호중이도 하는데 나는 왜 못하겠냐’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저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최근엔 ‘미스터트롯’에서의 제 모습을 보고 힘을 얻었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아시다시피 전 학창시절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가 마음을 다잡고 음악을 시작한 이후부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살고 있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언대로 남한테 피해 안 입히고 두 발 뻗고 잘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많은 분이 새로운 꿈을 가지셨으면 좋겠다. 앞으로 ‘김호중이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겠냐’는 생각을 더 많은 분이 하도록 만들겠다.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