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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2월 21일 제를랑 스타디움에서 열린 맨체스터Utd.(이하 맨유)와의 2007-08UEFA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은 ‘21세기형 강호’로 불리는 올림피크 리옹(프랑스)의 저력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경기였다.
이날 홈구장 그라운드에 오른 리옹 선수들은 베스트멤버가 총출동하다시피 한 ‘거함’ 맨유를 맞아 90분 내내 막상막하의 접전을 펼쳤다. 조직력을 앞세워 흐름을 풀어가는 특유의 팀 컬러가 빛을 발했고 상대 위험지역을 수시로 넘나들며 11개의 슈팅을 시도해 맨유(8개) 관계자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맞대결한 클럽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이자 유럽 최고 수준의 강호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 이상의 맹활약을 펼친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양 구단이 승점 1점씩을 나눠가진 경기 결과(1-1무승부) 또한 리옹의 입장에선 적잖이 아쉽게 느껴졌을 법하다. 후반 9분 터진 카림 벤제마의 선제골을 앞세워 리드를 유지하다 종료 직전(후반42분) 동점골을 허용해 다 잡은 승리를 날린 탓이다.
종료 휘슬이 울린 직후 TV화면에 비친 리옹 팬들의 얼굴이 실망감으로, 맨유 팬들의 표정이 기쁨으로 물든 이유 또한 여기에 있었다. 홈팀으로선 다 잡은 대어를 막판에 놓친 셈이고 손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다 살아난’ 격이니 극명하게 엇갈린 양쪽의 반응이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특히나 리옹에겐 첫 경기서 선전을 펼치고도 승리를 거머쥐지 못한 것이 향후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선수 구성, 구단 지원, 전술 수행 능력 등 객관적 지표에서 두루 열세로 평가받는 현실에는 변함이 없는 데다 8강행을 결정지을 2차전이 ‘적진’ 올드 트래포드에서 열리는 까닭이다.
알랭 패랭 리옹 감독이 자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3월4일로 예정된 2차전에 대해 “모든 경우의 수를 꼼꼼히 검토해 가장 성공 가능성 높은 방법을 찾겠다”고 밝힌 것 또한 힘든 도전이 되리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상위 레벨에 오르기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도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못하다. 냉정히 말해 현 시점에서 리옹이 UEFA챔피언스리그에 ‘올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그리 많지 않다. 자국리그서 부동의 선두를 질주하며 챔피언스리그에 편히 집중할 수 있었던 예전과 달리 올 시즌에는 리그 사정에도 신경을 쏟아야 하는 까닭이다.
르 샹피오나(Le Championnat, 프랑스 1부리그)를 6연패한 클럽으로서 ‘프랑스 최고 구단’이라는 타이틀에는 변함이 없지만 위상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1위를 달리고는 있으나 뒤를 쫓는 클럽들과의 격차가 크지 않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태다.
26라운드 현재 리옹은 16승4무6패로 승점52점을 기록 중인데, 보르도(49점)와 낭시(44점)가 가시거리 내에서 꾸준히 추월 가능성을 엿보고 있다. 26경기를 치른 시점에서 2위와의 승점 차가 3점 이내로 좁혀진 건 파리생제르망과 각축전을 벌이던 2003-04시즌(3점) 이후 처음이다. 최근 3시즌 동안 각각 2위와 6점-7점-8점 등 넉넉한 격차를 유지하며 여유 있게 유럽클럽대항전에 전념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상황에 처한 셈이다.
챔피언스리그와 자국리그를 한꺼번에 석권할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한 쪽에 역량을 집중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챔피언스리그에 전념해 유럽 정상에 도전하던지, 사상 초유의 자국리그 7연패를 위해 최선을 다하던지 양단간 결정을 내려야 하나 좀처럼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다간 2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어느 쪽도 손에 넣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마침 공교롭게도 맨유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2차전(3월4일) 4일 뒤에는 리그 2위 보르도와의 한판대결이 기다리고 있어 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와 리그 모두에서 웃는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지만 무리한 욕심을 부리다간 챔스 무대서 16강에 머물고 자국리그에서는 선두를 내주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기로에 선 리옹은 과연 어떤 결정을 내릴까.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받아 쥐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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