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은퇴, '록키의 눈물'이 떠오르다

  • 등록 2012-11-29 오후 5:11:46

    수정 2012-11-29 오후 5:11:46

박찬호가 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재단법인 박찬호장학회의 장학금 전달식에서 질문에 답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영화 록키 발보아 포스터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지난 2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5회 재단법인 박찬호장학회의 장학금 전달식이 끝난 뒤 박찬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해 입을 열었다. “아직은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가 그때까지의 결론이었다.

박찬호는 “미국에서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또 은퇴 후 하고자 했던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점검했다. 하지만 가장 충실하게 훈련을 했던 기간이기도 했다. 결국 아무것도 결정내리지 못했다. 내일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를 일”이라고 말한 뒤 “좀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구단과 상의한 후에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에 있는 동안 날씨가 좋아 훈련을 계속했다. 그러면서 예전 다저스때의 운동량을 소화해내는 나를 발견했다. 예전의 체력이 돌아온 듯 의욕이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또 한계를 느꼈다. 그래서 여전히 고민을 하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말을 가만히 듣다보니 영화 한편이 떠올랐다. 지난 2006년 개봉한 ‘록키 발보아’. 최고의 스포츠 영화 시리즈 중 하나였던 록키의 마지막 편으로 제작된 영화였다. 1편의 감동을 조금씩 갉아먹던 이후 시리즈들의 부진을 한방에 정리한 수작이었으며 추억의 뒷편으로 사라진 줄만 알았던 위대한 복서 록키를 마지막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영화 속 록키는 이미 환갑을 넘긴 할아버지였다. 모두들, 그리고 록키 자신까지 복서로서의 생명은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록키는 결국 다시 링에 오르겠다는 결심을 한다. 링에 오르기 전 말리는 오랜 친구 폴리에게 울부짖으며 이렇게 말한다. “내 가슴 속에 야수가 있어. 내 내면속에 꿈틀거리는 이 야수를 억지로 누르고 있다고. 그게 그렇게 힘들 줄 몰랐어.”

박찬호는 런닝 머신 위를 뛰며 전성기 때 했던 레벨을 슬쩍 올려봤었다고 했다. 그러고도 힘들지 않게 이겨내는 자신을 보며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슬몃 희망을 품기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어쩌면 그 순간, 박찬호의 가슴 속 깊은 곳에 살던 ‘야수’가 꿈틀거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박찬호는 이별을 택했다. 가슴 속의 열정은 잠시 묻어둔 채 세월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결정했다. 아마도 한동안은 적잖이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할런지도 모른다. 박찬호에게선 아직 뜨거운 무언가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부디 박찬호의 가슴 속 야수는 그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했으니 말이다. 그는 충분히 편안하게 제2의 인생에 도전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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