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컵 프리뷰]① 한국 축구, 애증의 아시안컵 역사

  • 등록 2015-01-04 오후 7:26:22

    수정 2015-01-04 오후 11:50:21

한국 축구에 있어 아시안컵은 암울한 역사였다. 사진은 2011년 대회 일본과의 준결승전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뒤 머리를 잡고 고통스러워하는 구자철. 사진=Gettyimages/멀티비츠
[이데일리 이석무 기자] 한국 축구에게 아시안컵은 애증의 관계다. 더 정확하게 말하지만 ‘애(愛)’는 사라지고 ‘증(憎)’만 남았다고 보는 게 옳다.

한국은 지금까지 열린 15번 대회의 대회에서 2번의 우승(1956년, 1960년), 3번의 준우승(1972년, 1980년, 1988년)을 차지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2000년과 2011년 3위에 오른 것이 최고 성적이다. 1960년 마지막 우승 이후 무려 55년간 아시아 정상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대회 초창기에는 한국이 절대 강자로 이름을 떨쳤다. 한국은 홍콩에서 열린 1956년 1회 대회와 안방에서 개최된 1960년 2회 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했다. ‘원조 강철 심장’으로 불렸던 미드필더 우상권은 1회와 2회 대회에서 각각 3골과 2골을 기록하며 2연패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후 3회 대회부터 ‘아시안컵 잔혹사’가 시작됐다. 1968년 이란 아시안컵 예선에선 박이천, 김정남, 김호 등이 스타플레이어들이 총출동했지만 일본·인도네시아·필리핀·대만 등에게 밀려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4회 1972년 태국 아시안컵에선 박이천, 차범근 등의 활약으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하지만 우승 문턱에서 이란에게 져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한국 축구가 배출한 불세출의 스트라이커 차범근이 성인 대표팀으로 첫 출전한 대회가 1972년 아시안컵이었다.

1976년 지역예선에서 탈락해 또다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한국 축구는 1980년 최고의 팀을 꾸려 다시 아시아 정상에 도전했다. 쿠웨이트에서 열린 1980년 아시안컵에서 한국은 정해원, 최순호, 이태호 등 젊은 공격수들을 앞세워 연승을 이어갔다.

특히 당시 만 18살이었던 최순호는 조별리그 4경기 연속골 등 총 7골을 기록하며 최연소 득점왕에 등극했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이끌 ‘괴물’의 탄생이었다. 오늘날 ‘손흥민 센세이션’을 능가하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북한과의 준결승에서 정해원의 연속골로 2-1 역전승을 거두고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우승을 눈앞에 두고 홈팀 쿠웨이트에게 0-3 완패를 당해 눈물을 흘려야 했다.

이후에도 한국은 아시안컵에서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1984년 싱가포르 대회에선 시리아, 카타르에게 연패를 당하며 2무2패로 조별리그 탈락의 쓴맛을 봤다. 당시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프로리그를 출범시킨 한국 축구였기에 부진의 충격은 더욱 컸다.

1988년 카타르 아시안컵은 가장 아쉬움이 남는 대회다. 한국은 김주성, 황선홍, 변병주 등 스타플레이어들을 앞세워 결승까지 순항했다. 하지만 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승부차기 끝에 패해 우승트로피를 놓쳤다. 준결승전까지 경기력이 워낙 좋았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웠던 준우승이었다.

1992년 일본 아시안컵에선 실업선발을 내세웠다가 지역예선에서 탈락하는 망신을 당했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한국 축구는 1996년 아랍에미리트 대회에 다시 최정예 멤버를 내세웠지만 8강전에서 이란에게 충격적인 2-6 대패를 당하며 다시 탈락했다.

한국 축구 역사상 두고두고 잊을 수 없는 악몽같은 패배였다. 그 경기 이후 박종환 대표팀 감독은 곧바로 경질됐다.

2000년 레바논 아시안컵은 이동국의 원맨쇼 대회였다. 당시 21살의 젊은 공격수 이동국은 이 대회에서 6골이나 터뜨리며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월드컵을 대비해 정예멤버가 나선 대표팀은 준결승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무기력하게 져 3위에 만족해야 했다. 그 대회 후 허정무 대표팀 감독은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2 한일월드컵을 마치고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 한국 축구는 2004년 중국 아시안컵에서 그 기세를 이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8강전에서 이란과 난타전 끝에 3-4로 패해 탈락했다. 월드컵 4강이라는 성과를 무색하게 만든 결과였다.

2007년 동남아 4개국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선 대회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7경기에서 3골이라는 최악의 빈공을 드러냈다. 간신히 4강까지 올랐지만 이라크에게 승부차기로 져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동국, 이운재 등 주전 선수들이 대회 기간 동안 술집에 드나든 사실이 드러나 국민적 비난을 받았다. 결국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은 그 대회 후 곧바로 경질됐다.

2011년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안컵은 3위에 그쳤지만 희망을 발견한 대회였다. 박주영이 부상으로 이탈해 역대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지동원, 구자철, 손흥민 등 젊은 선수들이 가능성을 보여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면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3위에 머물렀다. 이 대회는 한국 축구가 배출한 최고 스타 박지성, 이영표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대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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