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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완 킬러’라는 별명을 지닐 만큼 좌투수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재원이다. 그런 그가 올시즌 페이스가 썩 좋지 못한 차우찬을 상대로, 그것도 사실상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때려낸 안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재원이 이날 차우찬에게 친 안타는 앞으로의 그에게 보다 많은 기대를 걸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재원은 군 입대 전, SK의 좌투수 스페셜리스트였다. 좌투수를 상대로한 대타로 중용됐으며 중심 타선으로 선발 기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재원은 그때마다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SK의 왕조 구축에 작은 힘을 보탰다.
이재원은 상무 시절 더 이상 좌투수에게 강점을 가진 타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우투수를 상대로 타율이 훨씬 높았다. 모 팀 2군 감독은 “2군에서 본 이재원은 좌투수에게 오히려 약했다. 처음엔 우투수 위주로 상대했는데 올시즌 중반 이후로는 좌투수 투입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재원은 현재 준비 자세에서 왼 발을 많이 오픈 시켰다가 타격을 하며 각도를 줄이는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가 가장 좋은 대응을 할 수 있었던 좌투수와 승부에서 약점을 만들었다. 좌투수가 던진 몸쪽 공을 기가 막히게 잡아채며 당겨치던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타구 방향이 중견수를 기점으로 우측으로 많이 나오게 되며 우타자와 승부에서 큰 장점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팀 내에선 ‘이재원’ 하면 ‘좌투수’를 먼저 떠올린다. 그가 제대 후 곧바로 엔트리에 합류하며 한국시리즈까지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 부분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재원 입장에선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재원은 “솔직히 이제는 우투수가 좌투수 보다 훨씬 편하다. 대처해 본 경험도 많고 자신감도 있다. 반면 좌투수에 대한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이 좌투수 공략인 만큼 더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원이 한국시리즈서 처음 좌투수에게 때려낸 안타가 의미 있는 이유다.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조금씩 해법도 찾아가고 있다는 걸 차우찬 상대 안타에서 보여줬다. 일단 마수걸이에 성공한 만큼 다음 기회에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이재원의 고독한 싸움이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