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스볼 블로그]이미지와 고독한 싸움 중인 이재원

  • 등록 2012-10-31 오후 4:10:38

    수정 2012-10-31 오후 4:10:38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 SK 이재원은 29일 한국시리즈 4차전의 숨어 있는 승자다. 그는 팀이 4-1로 앞선 7회말 2사 1루서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 삼성 차우찬으로부터 우전 안타를 뽑아냈다. 비록 다음 타자 정근우의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조동찬의 글러브에 빨려들어가며 득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알린 안타였던 것 만은 분명하다.

사진=SK 와이번스
이재원이 이날 때려낸 안타는 이번 한국시리즈서 만들어 낸 첫번째 안타다. 이전 네 타석에선 볼넷 하나만 얻어냈을 뿐, 안타는 치지 못했다.

‘좌완 킬러’라는 별명을 지닐 만큼 좌투수에 강하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재원이다. 그런 그가 올시즌 페이스가 썩 좋지 못한 차우찬을 상대로, 그것도 사실상 승부가 기운 상황에서 때려낸 안타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얼핏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속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재원이 이날 차우찬에게 친 안타는 앞으로의 그에게 보다 많은 기대를 걸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이재원은 군 입대 전, SK의 좌투수 스페셜리스트였다. 좌투수를 상대로한 대타로 중용됐으며 중심 타선으로 선발 기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재원은 그때마다 제 몫을 충실히 해내며 SK의 왕조 구축에 작은 힘을 보탰다.

하지만 지난 2년간 그에겐 적지 않은 변화가 생겼다. 타격 매커니즘이 바뀌면서 좌,우 투수에 대한 공략법도 달라졌다. 달라진 공략법은 그의 장.단점도 뒤바꿔버렸다.

이재원은 상무 시절 더 이상 좌투수에게 강점을 가진 타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우투수를 상대로 타율이 훨씬 높았다. 모 팀 2군 감독은 “2군에서 본 이재원은 좌투수에게 오히려 약했다. 처음엔 우투수 위주로 상대했는데 올시즌 중반 이후로는 좌투수 투입을 늘렸다”고 말했다.

이재원은 현재 준비 자세에서 왼 발을 많이 오픈 시켰다가 타격을 하며 각도를 줄이는 타격 폼을 갖고 있다. 이런 변화는 그가 가장 좋은 대응을 할 수 있었던 좌투수와 승부에서 약점을 만들었다. 좌투수가 던진 몸쪽 공을 기가 막히게 잡아채며 당겨치던 모습은 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타구 방향이 중견수를 기점으로 우측으로 많이 나오게 되며 우타자와 승부에서 큰 장점을 갖게 됐다.

그러나 여전히 팀 내에선 ‘이재원’ 하면 ‘좌투수’를 먼저 떠올린다. 그가 제대 후 곧바로 엔트리에 합류하며 한국시리즈까지 나설 수 있었던 것도 그 부분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재원 입장에선 기쁘면서도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은 것은 행복한 일이지만 좌투수에 대한 부담을, 그것도 혼자만의 싸움으로 이겨내야 한다는 건 힘겨운 일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그의 존재감은 ‘좌투수 킬러’일 때 빛이난다. 어느쪽이 더 편하고 말고를 논할 만큼 입지를 다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스스로 이겨낼 수 밖에 없다.

이재원은 “솔직히 이제는 우투수가 좌투수 보다 훨씬 편하다. 대처해 본 경험도 많고 자신감도 있다. 반면 좌투수에 대한 자신감은 많이 떨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일이 좌투수 공략인 만큼 더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재원이 한국시리즈서 처음 좌투수에게 때려낸 안타가 의미 있는 이유다.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을 하고 있지만 스스로 조금씩 해법도 찾아가고 있다는 걸 차우찬 상대 안타에서 보여줬다. 일단 마수걸이에 성공한 만큼 다음 기회에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설 수 있게 됐다.

이재원의 고독한 싸움이 해피 앤딩으로 마무리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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