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도 아니고 지하도 아닌 반지하 주택에 전원 백수 가족이 살고 있다. 연이은 사업 실패로 실직한 가장 기택, 해머 선수 출신 엄마 충숙, 5수생 아들 기우, 그리고 미대에 떨어진 딸 기정. 네 식구는 피자 박스를 접으며 근근이 살아간다. 어느 날 기우에게 명문대생 친구 민혁이 찾아와 자신이 해왔던 고액 과외 ‘알바’를 맡긴다. 가족에게 고정 수입이 생기는 흔치 않은 기회. “아버지, 저는 이게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 내년에 이 대학 꼭 갈 거거든요.” 기우는 기정의 기술(?)을 빌려 가짜 재학증명서를 손에 들고 박사장네 집에 과외 면접을 보러 간다. 그렇게 발을 들인 박사장네 집은 눈이 부실 만큼 햇빛이 가득하다. 햇빛이 잠깐 머물다 사라지는 반지하와는 그야말로 딴세상이다. 기우는 사모 연교를 깜쪽같이 속여 영어 과외를 맡게 되고, 미술 선생을 구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기정을 떠올린다.
‘기생충’은 극과 극 삶의 조건을 가진 두 가족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서 계급 차이를 비춘다. 저지대와 고지대, 반지하 주택과 고급 주택, 계단 등 공간 및 구조물과 무형태의 빛, 물 등을 통해서도 시각적으로 두 가족의 차이를 부각시킨다. 영화는 접점이 없는 빈자 가족과 부자 가족을 과외로 연결시켜 계급 문제를 들추는데, 다른 어떤 집단도 아닌 가족의 이야기가 피부에 와닿는다.
‘기생충’의 묘미는 빈자와 부자인 두 가족을 단순히 선인과 악인으로 구분짓지 않는 데에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을 갖고 있고, 이들 가족도 마찬가지다. 기우는 가족의 생계를 위함이라고 하지만 과외를 위해서 서류를 위조하고, 연교는 교양있는 척 품위있는 척 허세를 부리다가도 아들의 걱정에 눈물을 왈칵 쏟는 보통의 엄마다. 연교가 기정에게 “우리 제시카(기정) 순진해서 어떡해”라고 걱정하는 모습은 거짓이 아닌 진짜다. 인물들은 각자 처한 처지와 상황에 따라서 캐릭터가 수시로 변한다. 인물의 캐릭터 변화는 극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또 하나의 장치다.
감독 봉준호. 러닝타임 131분.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5월3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