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킬미힐미’와 ‘순정에 반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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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우울증과 정신 분열 그리고 분노 조절 장애. 현대인의 ‘필수 질병’으로 꼽히는 아픔이다. SNS의 창궐로 사회성 결여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군중 속의 고독에 지친다. 급여 지급일을 위해 존재하는 직장 생활에 자아 실현의 꿈은 멀어져만 간다. 모든 것이 급하게 소비되는 시대에서 남을 둘러볼 여유는 없다.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삶은 날 쉽게 화나게 만든다.
운이 없는 누군가가 앓는 대단한 병이 아니다. 여행과 휴식보다 정신과 상담이 ‘힐링하는 법’으로 꼽히는 요즘 시대에선 누구나 이런 증상을 겪는다. 사회를 반영하는 대중매체에서도 이 같은 현상을 읽을 수 있다. TV는 상담소가 된 듯하다. 모난 한 사람을 따뜻하게 보듬으려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늘고 있다. 안방극장에 심리학 바람이 불고 있다.
| ‘킬미힐미’ 지성과 ‘순정에 반하다’ 정경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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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팍男에 공감하다
다중인격에 흔들리는 남자가 있었다. 안하무인 몸쓸 성격을 가진 남자도 등장했다. 정작 스스로 치료할 수 없는 정신과 의사도 남자였다. 요즘 드라마 남자 주인공에겐 ‘괴팍남(男)’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케이블채널 tvN ‘하트투하트’, MBC ‘킬미, 힐미’, SBS ‘하이드 지킬, 나’, 종합편성채널 JTBC ‘순정에 반하다’ 등이 대표적인 예다. 7가지 인격을 가진 남자, 모든 사람에게 이유를 불문하고 까칠하게 대하는 남자 등 독특한 캐릭터는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안겼다. ‘세상에 이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까’ 싶은 설정이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나에게도 저런 모습이 있다”고 얘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실제로 ‘하트투하트’에서 정신과 상담의 고이석을 연기한 배우 천정명은 “내 캐릭터는 물론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아픔을 가지고 있다”며 “그 아픔이 이들만의 가족사, 연애사, 자기강박에서 비롯됐지만 사실 ‘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공감할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하트투하트’의 연출을 맡은 이윤정 PD도 “시청자들이 보통의 범주에서 공감하길 원했지만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슬픈 마음을 갖기도 했다”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자기도 모르는 상처에 힘들어하고,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전했다.
| 하트투하트 천정명 최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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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女를 필요로 하다
아픔을 인지하게만 둘 수는 없다. 비록 내용은 허구일지라도 실제로 위안이 될 수 있는 힘은 막강하다. 그래서 존재하는 인물이 ‘힐링녀(女)’다. ‘괴팍남’을 길들이고 변화시키는 이들이다. 누구도 치료할 엄두를 내지 못한 남자를 사랑으로 보듬어준다. 귀 기울여주지 않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들으며 시선을 쏟는다. 드라마 속 힐링녀는 ‘당신의 아픔은 나도 함께 앓는 평범한 상처입니다’고 말하는 해결사 역할을 하고 있다.
‘킬미, 힐미’의 황정음은 오리진이란 역할로 7가지 인격에 자신의 삶을 잃은 차도현을 감싸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황정음은 드라마가 끝난 후 꼽은 명대사로 이걸 꼽았다. ‘넌 돌연변이가 아니야.(중략) 매일 죽고 싶은 나와 살고 싶은 내가 싸우면서 살아가. 넌 싸워볼 용기조차 없는 거잖아.’ 황정음은 이 대사에 격한 공감을 표했다. 행복과 고통, 두 가지 면을 모두 가진 배우로 살면서 느낀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대사가 스스로를 치유시켰다고 했다.
장기 기증의 후유증으로 기증 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기억과 성격에 영향을 받는다는 셀룰러 메모리 증후군을 소재로 한 ‘순정에 반하다’도 비슷하다. 연출을 맡은 지영수 PD는 “저마다 스스로를 ‘괴물’이라 부를만큼 팍팍한 삶을 살지만 정작 우리 현실엔 이를 치유할 존재가 없다”며 “‘순정에 반하다’는 비록 의학적인 장치에서 치유의 힘을 빌렸지만 사랑이 얼마나 큰 성장의 기폭제가 되는지 김소연 캐릭터가 잘 보여줄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