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의 축구보기]EPL에 데뷔한 김두현에게...과정이 중요하다

  • 등록 2008-08-18 오후 4:43:51

    수정 2008-08-19 오후 3:39:05

[이데일리 SPN 김호 칼럼니스트] 16일 밤 모처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7년 전, 수원 삼성 감독 시절 가능성을 보고 뽑았던 김두현(26.웨스트 브로미치 앨비언. 이하 제자이기에 두현으로 부름)이 명문 아스널을 상대로 치른 프리미어리그 데뷔전이었다.

뿌듯했다. 소속 팀이 챔피언십(2부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약체라 우승 후보 아스널에 비하면 수준은 떨어졌지만 두현이는 자신있게 패스와 슈팅을 날리면서 전혀 주눅들지 않은 플레이를 펼쳤다. 첫 경기부터 팀의 리더로 나섰다는 것도 의미가 있었다.

강팀을 상대하다보니 아무래도 수비에 더 비중을 두느라 움직이는 폭도 좁아지고 소극적인 면도 보였지만 자신감이 쌓이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두현이 스스로도 갈수록 나아지는 스타일이다.

마침내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누비는 두현이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과정을 착실하게 밟아 나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 등도 처음부터 세계적인 선수가 된 것은 아니었다. 다 시간이 필요했다. 박지성이 뛰는 맨유의 내로라하는 선수들도 대부분 그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축구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11명이 모여서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환경이 다른 곳으로 옮기면 동료들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하고, 새로운 조직을 파악해야 하며 새로운 리그의 전술과 전략을 익혀야 한다. 나아가 그 나라의 문화까지 알아야 한다. 해외에 진출한다고 모든 게 다 이뤄지는건 아니다.

또 처음부터 강팀에 가면 수준이 높아 적응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팀이 약하면 동료들끼리 서로 보살피고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여기서 잘 적응하면 보다 좋은 팀으로 가고, 또 큰 선수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두현이가 꿋꿋하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다.

두현이가 영국으로 떠나기 전 전화를 했을 때 두 가지 이야기를 해 준 기억이 있다. 수비할 때는 거리를 잘 조절하고, 공격 할 때는 패스 분류를 빨리 하라고 했다. 짧게 넣어 만들어 가면서 할 것인지, 길게 놓고 단번에 해결할 것인지 하는 판단의 문제들이다. 프리미어리그는 K리그보다 프레싱이 빠르기 때문에 더욱 필요한 것이다. 두현이는 화려하진 않지만 수비력과 순발력 근성을 겸비한 선수다. 지능도 있고 섬세한 축구를 할 줄 안다. 이런 좋은 재능에 더해 실전에서 염두에 뒀으면 하는 것들이었다.

더불어 소속 팀 감독의 의중을 재빨리 파악하는 것은 물론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할 팀들의 특성도 빨리 간파해야 할 것이다. 그라운드에서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것과 함께 집에서 경기 장면을 비디오로 분석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끊임없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프리미어리그 그라운드를 누비게 됐다고 들떠 있어서만은 안된다.

두현이는 가을에 포도 익듯 영글어 가는 모습이 좋다.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 큰 뜻을 펴고 있는 제자와 전화로라도 자주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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