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 뉴웨이브③]홍대 인디씬의 신상, 장기하가 '핫'한 이유

  • 등록 2008-12-02 오후 1:36:37

    수정 2008-12-02 오후 2:40:33

▲ 가수 장기하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당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밉지가 않았다.
 
장기하(26)에게 왜 밴드 이름에 ‘얼굴들’이 붙었냐고 묻자 “얼굴을 보고 (멤버들을) 뽑았는데 실력마저 괜찮았다. 새겨 들어주시기 바란다”는 답이 돌아왔다. ‘싸구려 커피’ 등 그의 음악 속 재치가 오롯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요즘 홍대 인디씬과 인터넷은 시쳇말로 ‘장기하가 대세’다. 장기하가 양팔을 위 아래로 휘저으며 부르는 ‘달이 차오른다, 가자’는 인터넷에서 ‘텔 미’ 못지않은 UCC 제작 열풍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장기하의 춤을 패러디함은 물론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과 그룹 산타 에스메랄다의 ‘돈 렛 미 언더스투드’의 음악과 영상을 편집해 한 네티즌이 만든 ‘달찬놈’ UCC는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장가하는 이와 같은 음악 팬들의 관심에 대해 “저는 제 자신이 청중이라면 과연 재미를 느낄까 하는 것에 염두를 두고 음악을 만든다”며 “저와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분들은 분명 재미있게 들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이 생각 보다는 많았다”고 말했다.

또 ‘달이 차오른다, 가자’에서 선보인 장기하의 춤이 화제다고 묻자 “어떤 곡에 그에 어울리는 특정한 기타 리프를 얹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곡에 어울리는 춤 동작을 한 것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의 몸짓 하나가 꾸며진 것이 아닌 ‘장기하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는 음악처럼 솔직했고 자연스러웠다.

'벽장 속 제습제는 벌써 꽉 차 있으나 마나 모기 때려잡다 번진 피가 묻은 거울을 볼 때마다 어우 약간 놀라 미지근한 콜라가 담긴 캔을 입에 가져가 한 모금 아뿔싸 담배 꽁초가…’

장기하의 음악이 인기인 이유는 또 있다. 특유의 창법과 노랫말이 그것. 장기하는 ‘싸구려 커피’에서 자취생들의 애환을 담아 노래했다. 

▲ 그룹 '장기하와 얼굴들'


또 이십대 중반 나이답지 않게 70년대 이전 한국 음악의 묘미를 가사와 음에 적절히 활용하는 묘미도 발휘했다. ‘싸구려 커피’의 ‘뭐 한 몇 년간 세숫대야에~’ 부분과 ‘느리게 걷자’의 ‘워찍하까~~’ 부분은 마치 판소리의 아니리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장기하에게서 송창식과 산울림, 이장희의 느낌이 난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장기하는 이에 대해 “가사를 만들 때 한국말 자체가 가진 운율을 보존하려 노력하는 편이다”며 “좀 더 말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다 보니 그런 식으로 표현된 것이다. 산울림 1, 2집과 송골매 1집은 내게 음악적으로 큰 자극을 준 앨범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장기하는 익히 알려졌다시피 서울대 출신이다. 최근 컬트 팬들을 중심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홍대 인디씬은 아직 ‘배고픔’의 장소로 통한다. 명문대 출신으로 좀 더 편안한 길을 걸어갈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과연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었을까?

“앞 일은 모르는 거죠. 음악을 가장 중점적으로 할 것은 확실합니다만 그것만 해서 먹고 살 수 있으면 그것만 할 거고, 그럴 수 없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일도 해야겠죠.”
 
장기하에게선 성공에 대한 조바심과 불안을 엿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현 상황을 물 흐르듯 지켜보겠다는 여유가 느껴졌다.

인터뷰 말미, 자신을 “좋은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로 기억해 줬으면 좋겠고 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소박한 음악적 바람을 밝힌 장기하. 또 "많은 분들의 관심이 돈으로 연결되면 다른 시도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그의 말에선 순수함과 동시에 음악에 있어 자신을 인디 혹은 오버로 구분짓지 않겠다는 자유로움이 엿보이기도 했다.
 
내년 1월 정규 앨범을 발매하는 장기하. 그의 새 앨범이 궁금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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