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 비밀과 거짓말, 그 눈물겨운 서정(抒情)에 대하여

오종 영화 '프란츠' 리뷰
  • 등록 2017-08-07 오전 11:20:44

    수정 2017-08-07 오전 11:50:09

영화 ‘프란츠’
[오동진 영화평론가] 프랑스의 문제적 감독 프랑수와 오종의 개봉 신작 ‘프란츠’는 원래 에른스트 루비치 감독의 1932년작 ‘내가 죽인 남자’를 원작으로 한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보다는 1500년대에 프랑스 남서부에서 실제 있었던 사건 ‘마르탱 게르의 귀환’을 닮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우리에게는 제라르 드 파르디외 주연의 1982년작 ‘마틴 기어의 귀향’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사랑하는 남편이 집을 떠났다. 어느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홀연히 돌아 온다. 그래서 다시 행복한 삶을 살아 간다. 하지만 이 남편은 남편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남편 행세를 해 온 것이다. 이에 비해 ‘프란츠’는 이야기의 궤적이 전혀 다른 영화다. 일단 1차 대전 직후를 배경으로 한다. 여자의 애인이 전사했고 그 애인과 예전에 친구였다는 남자가 찾아 오면서 벌어지는 얘기다.

어쨌든 ‘프란츠’의 아드리엥(피에르 니니)도 죽은 애인이 아니다. 그런데 잠깐 애인처럼 된다. 아니 그런 척 하거나 그럴 수 있다는 착각을 준다. 이 모든 일은 어느 날 프랑스 남자 아드리엥이 독일 여인 안나(폴라 비어)의 죽은 애인 프란츠(안톤 폰 루케)의 무덤 앞에 나타나면서 벌어진다. 아드리엥은 안나와 (안나의 시부모가 될 뻔한) 프란츠의 부모 호프마이스터 부부(에른스트 스퇴츠너, 마리 그루버)앞에 나타나 사람들의 가슴을 흔든다. 프란츠는 1차 대전에 나가 전사했다. 아드리엥은 전쟁이 벌어지기 전, 프란츠가 파리에서 지낼 때 만난 프랑스 친구라고 했다. 아드리엥은 점차 프란츠 대신 안나의 마음 속을 파고든다. 프란츠의 부모도 아드리엥이 안나와 계속 ‘함께 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 비밀이 담겨져 있고 거짓말과 거짓말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이 영화 ‘프란츠’는 결국 ‘비밀과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는, 사람의 과거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이렇게 많은 오해와 풀리지 않는 비밀, 아니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은 거짓말로 점철돼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운명은 늘 베일 속에서 움직인다.

안나는 결국 아드리엥의 비밀을 알아 낸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거짓말을 위해 스스로 거짓을 꾸며 내기 시작한다. 그런데 자신이 왜 그러는지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괴롭다. 다만 모든 사람들, 특히 프란츠의 부모가 진실을 알게 된다 한들, 그게 꼭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드리엥이 보내 온 편지를 거짓으로 꾸며 부모한테 읽어주기 까지 한다.

이건 선의의 거짓말일까. 아니면 모든 일을 더욱 더 질곡(桎梏)에 빠뜨리게 만드는 어리석은 행동에 불과한 것일까. 마음 속이 갈기갈기, 괴로워서 죽을 것 같은 안나는 신부를 찾아 가 모든 것을 고백한다. 고해성사 실의 신부는 늘 그렇듯, 고개를 살짝 돌린 채 안나에게 되묻는다. “진실을 알린다 한들 지금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모든 것을 용서 하시오. 예수가 그랬듯이. 이제 그 청년을 용서 하시오.”

영화 ‘프란츠’
프랑스와 독일은 1차 대전 때 사생결단으로 싸웠다. 안나가 사는 마을의 사람들은 프랑스인들이라면 언제든지 얼굴에 침을 뱉을 준비가 돼있다. 게다가 안나는 연인인 프란츠가 프랑스와의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한 아픔이 있다. 프란츠와 전쟁 전부터 친구였다고는 하지만 아드리엥은 프랑스인이다. 그가 독일의 한 작은 마을에 와서 편견과 부당한 공격에 시달리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마을에 찾아 온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일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안나와 프란츠의 부모, 곧 호프마이스터 부부는 프랑스를 받아 들인다. 적국을 용서한다. 전쟁을 용서하기에 이른다. 그 전쟁에 참여한 자신의 조국을 더 이상 탓하지 않으려 노력하게 된다.

호프마이스터 박사는 프랑스 청년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난하는 마을 남자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한다. “프랑스의 아들들이 죽었을 때 우리들은 축배를 들었소. 우리들의 아들이 죽었을 때 저쪽에서도 축배를 들었소. 우리 모두는 아들의 죽음에 축배를 들었던 아버지들이오.”

용서는 자각과 반성에서 온다. 역사적 용서는 개인의 용서에서 온다. 아드리엥을 받아 들이면서 호프마이스터 부부에게는 비로소 아들을 떠나 보낼 수 있게 된다. 아드리엥을 받아 들이게 되면서 안나 역시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문제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는 것이다. 관계는 원래부터 꼬여 있거나 늘 꼬여 가게 마련이다. 그래서 비밀과 거짓말이 필요한 것이며 이 비밀과 거짓말을 어떻게, 얼마만큼 슬기롭게 이용하느냐, 또 그것을 두고 때론 슬쩍 눈감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는 지의 여부가 결정된다. 삶은 계속되는 것이다. 삶의 의지란 모든 비밀과 거짓말을 능가하는 것이다. 안나가 선택하는 것 역시 바로 그 부분에서 찾아진다.

영화 ‘프란츠’
프랑수와 오종이 스타일 면에서 많이 변했다. 그는 이번에 ‘도발과 파격’보다는 ‘서정(抒情)’을 택했다. 하지만 피치 못할 비밀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들, 그 휴매니티에 대한 그의 주제 의식은 이번 역시 일관되게 펼쳐진다. 어쩌면 그의 전작(全作)들 대부분이 선의의 거짓말, 필요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다. 오종의 전작(前作)인 ‘나의 사적인 여자 친구’는 죽은 친구의 남편이 트랜스젠더라는 사실을 지켜주는, 그래서 결국 사람들에게 그 거짓말과 비밀을 지켜주는 여인의 이야기다. 오종의 초기작들도 알고 보면 대부분 이 주제의 범주 안에 들어 가 있는 영화들이다. 저택에 고립된 8명의 여인들이 벌이는 비밀과 거짓말의 잔치에 대한 이야기(‘8명의 여인들’)였거나, 자신이 친딸이라며 갑자기 찾아 온 젊은 여성 때문에 빚어지는 미스터리(‘스위밍 풀’)였다. 이제는 헤어진 부부 각자가 지닌 숱한 과거의 기억들, 그 거짓과 진실들에 대한 얘기(‘5x2’)도 있었고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한 사진작가의 선의의 거짓말을 다룬 얘기(‘타임 투 리브’)도 있었다.

오종의 영화는 늘 그렇게 우연이 필연이 되고 필연이 우연이 되는 거짓말의 관계들로 가득 차 있다. 오종이 느끼기에 세상은 진실보다 거짓말이 더 지배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본질은 거짓말이다. 행복한 거짓말일 수 있거나 행복하기 위한 거짓말일 수가 있다. 그 거짓말은 거짓말 자체보다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본색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오종의 영화, 특히 이번 영화 ‘프란츠’가 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그 지점에 놓여 있을 것이다.

영화 ‘프란츠’
흑백과 컬러를 오가는 영상은 주인공 안나의 의식 속 무의식 속 욕망을 교차시킨다. 1차 대전 직후 프랑스-독일 사회의 음영(陰影)을 적절하게 그려내는데 있어 매우 성공적이기도 하다. 쇼팽의 녹턴 20번이 피아노 곡이 아닌 주인공 아드리엥의 바이올린으로 연주된다. 그게 그렇게 일품이 아닐 수 없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려 있는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자살>은 새삼스럽다. 안나는 당신도 이 작품이 좋은 가라고 묻는 옆의 청년에게 답한다. “살아갈 이유를 주니까요.” 죽음과 헤어짐. 그리고 좌절과 실연은 때론 사람들에게 역설의 희망을 준다.

영화 ‘프란츠’가 애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 같이, 어떻게든, 그리고 안나처럼, 늘 새롭게 살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살아가야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위대한 것이다. 만고의 진리다.

◇[오동진의 닥쳐라! 영화평론]은 영화평론가 오동진과 함께합니다.

글을 쓴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상세하다 못 해 깨알과 같은 컨텍스트(context) 비평을 꿈꿉니다. 그의 영화 얘기가 너무 자세해서 읽는 이들이 듣다 듣다 외치는 말, ‘닥쳐라! 영화평론’. 그 말은 오동진에게 오히려 칭찬의 글입니다. 윗글에 대한 의견이 있으신 분들은 ‘닥쳐라!’ 댓글을 붙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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