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구단 '비밀 PT'에 비춰진 한국 야구 현실

  • 등록 2013-01-08 오후 12:23:09

    수정 2013-01-08 오후 12:23:09

부영-전북과 KT-수원이 7일 KBO에 10구단 유치 신청서를 접수했다. 왼쪽부터 이중근 부영 회장과 김완주 전북 지사, 양해영 KBO 사무총장(위). 이재율 경기도 부지사와 이석채 KT 회장, 염태영 수원 시장과 양해영 KBO 사무총장. 사진=뉴시스
[이데일리 스타in 정철우 기자]7일 도곡동 야구회관. 7층 기자실은 10구단 창단 신청서를 제출한 부영-전북(오후 1시30분)과 KT-수원(오후 2시30분)의 릴레이 기자회견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일을 정리하며 오랫 동안 알고지낸 한 기자와 이런 대화를 나눴다.

“준비 정말 많이 했나봐. 말들이 장난 아니네.” “그러니까. 약 팔았으면 살 뻔 했어.”

그만큼 양 측의 준비 상황과 대응 논리는 꽤 탄탄했다. 신청서에 담긴 내용 중 1/1000 정도만 살짝 이야기했을 뿐이었음에도 그랬다. 염태영 수원 시장은 “프리젠테이션을 정말 많이 준비했다. 못 다한 말은 그때 제대로 들려드리겠다”고 자신하기도 했다. 이는 부영-전북 측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기자이기에 앞서 야구 팬으로서 뭔가 벅찬 기분이 들었다. 불과 몇년 전 같은 장소에선 공중 분해 된 현대 유니콘스가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만 연일 브리핑되곤 했었다. 절실한 마음을 담아 반드시 10구단을 유치하겠다는 양 측의 열띤 공방은 이해관게를 떠나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안겨줄 수 있는 멋진 퍼포먼스였다.

또한 기업과 지자체가 야구를 통해 얼마나 큰 꿈을 꾸고 있는지를 들으며 정작 야구계가 채 보여주지 못했던 야구의 청사진까지 였볼 수 있었다. 지역의 젊은이들에게 돈 버는 것 말고도 즐길 수 있는 문화를 제공해야 한다는 각오 또한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문득 아쉬움이 스쳐갔다. 정작 진짜 무대인 프리젠테이션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은 극히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20여명으로 구성될 평가위원회와 KBO 일부 관계자들이 아니면 수원과 전북이 내 놓을 비전과 절실함을 공유하지 못한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당초 프리젠테이션 일정까지 비공개로 하려 했다.

KBO의 결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유치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양측의 공방은 지나치게 과열됐고 자칫 공정성 시비 탓에 10구단 이라는 잔치가 단박에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모두가 느끼고 있다.

평가 위원 선정에 대해서도 극비를 유지하고 있으며 어떤 내용도 일단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극히 꺼리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수원과 전북이 각각 KT, 부영과 손을 잡고 10구단 유치전에 나서자 연고 출신 야구인을 중심으로 야구계도 여론이 갈렸다. 직접 깊숙히 간여하는 인사들이 게속 등장했다. 학계도 양측의 요청에 따라 조사 결과 등을 발표하며 힘을 보탰다. 객관적 인사를 찾는 것 부터 힘겨운 상황이 됐다.

또한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점에서 더 예민하고 과열될 수 밖에 없다는 아쉬움이 크게 남았다. 한국 야구 저변상 10구단 이상의 운영은 통일 전에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 정설이다. 올림픽 처럼 다음 기회가 있아면 ‘아쉽지만...’으로 끝낼 수 있지만 마지막 기회가 되다보니 더욱 예민하고 집요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프리젠테이션을 비롯, 평가위원회나 준비 내용들이 공개되면 자칫 더 큰 화를 부를 수 있는 일촉 즉발의 긴장감이 KBO를 감돌고 있다. “KBO가 부럽다는 타 단체의 말에 기분이 좋다가도 서늘해진다”는 한 KBO 관계자의 말이 허투를 들리지 않는 이유다.

우리는 지난 2011년,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프리젠테이션을 가슴 따뜻하게 기억하고 있다. 피겨 퀸 김연아, 나승연 조직위 대변인의 진심과 비전이 담긴 프리젠테이션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경탄을 자아냈다. 우리가 당당한 올림픽의 주인이 될 수 있음을 그들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프리젠테이션 영상이 공개되자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럽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때문에 이번 10구단 프리젠테이션을 볼 수 없다는 것, 그리고 보지 못할 수 밖에 없는 우리 야구의 현 주소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올림픽과 비교해 보니 한국 프로야구의 현실에 대해서도 바로 눈을 돌릴 수 있었다. ‘이런 열기는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건 지금이 ‘기회이자 위기’라는 뜻과 같은 것이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야구단이 갑자기 인기가 생겼다는 건 언제든 다시 외면받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프로야구 리그가 있는 나라 중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는 것이 한국 프로야구다. 하지만 10구단은 성장의 끝이다. 내실을 다져두지 않으면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

‘위기 뒤 기회’ ‘기회 뒤 위기’는 야구의 가장 대표적인 속설이다. 우리는 그동안 수도 없이 이 말이 사실임을 야구를 통해 알게됐다. 10구단 선정은 이제 잔치의 수준을 넘어섰다. 이미 어딘가에서 위기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두가 더 신경쓰고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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