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본선 진출국 확대 '한국 축구, 득보다 실 크다'

  • 등록 2017-01-11 오전 9:54:39

    수정 2017-01-11 오전 10:45:30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이 월드컵 개최국 확대 방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지구촌의 축구 축제 월드컵이 2026년 대회부터 본선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10일(한국시간) 스위스 취리히 FIFA 본부에서 평의회를 열고 월드컵 본선 출전 국가 수를 지금의 32개국에서 48개국으로 늘리기로 만장일치 결정했다.

이로써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늘어난 것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24개국에서 32개국으로 확대된 이후 28년 만이다. 본선 진출국 확대는 지아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의 공약이었다.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한국 입장에선 월드컵 본선 진출 가능성이 훨씬 높아졌다는 점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다. 현재 32개국 시스템에서 아시아 대륙에 배분된 본선 진출 쿼터는 4.5장이다. 하지만 본선 진출팀이 48개국으로 확대되면 아시아 쿼터도 최소 6장에서 최대 9장까지 늘어난다.

특히 이번 FIFA의 결정이 세계 축구의 최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배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따라서 향후 본선 티켓 배분에도 아시아에 대한 배려가 더 커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본선 진출국 확대가 한국 축구에 반드시 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16강 진출 가능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손해라는 지적도 있다. 한국은 월드컵 본선 진출 자체가 목표가 아니다. 최소 16강 이상의 성적을 바라보고 본선에 도전한다.

그런데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도 더 많이 참가한다. 훨씬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16강조차 바늘구멍이 된다.

현재 유력하게 검토되는 경기 방식은 3개 팀씩 16개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벌이는 것이다. 본선 조별리그가 실질적인 최종예선인 셈이다. 각 조 2위까지 32강을 가린 뒤 그때부터 토너먼트로 최종 우승팀을 가리게 된다.

조별리그 구성은 대륙별 안배 원칙과 FIFA 랭킹에 따라 이뤄질 전망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유럽이나 남미 강호와 한 조에 속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 이래저래 불리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본선에서 약팀을 하나라도 만나려면 FIFA 랭킹을 끌어올려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게다가 본선 진출국이 늘어나면 아시아 지역 자체가 더 치열해질 가능성도 있다. 그동안 월드컵 본선 진출에 큰 기대를 갖지 않았던 아시아 중하위권 국가들이 대표팀을 강화하기 위해 적극적인 지원에 나설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일단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FIFA의 결정에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정 회장은 “전 세계적인 축구 열기 확산과 보급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가장 많은 인구를 지닌 아시아 대륙은 세계 축구의 미래다. 아시아에 월드컵 참가 티켓이 대폭 늘어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월드컵 참가의 희소가치와 경기 수준 저하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참가팀이 늘어난 지난해 유로 2016의 예에서 보듯이 최근 각국의 경기력이 상향 평준화돼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월드컵 본선에서 치러질 총경기 수는 현행 64경기에서 최대 88경기까지 늘어난다. 후원 기업들의 광고도 많아질 것으로 보여 마케팅 수입의 증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32개국)의 예상 수입은 55억 달러(약 6조6000억원). 반면 48개국이 되면 최대 65억 달러(약 7조8000억원)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특히 FIFA는 중국 등 인구가 많은 국가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경우 막대한 스폰서와 중계권료 수입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FIFA의 결정에 반응은 대륙별로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번 월드컵 본선 진출국 확대를 가장 환영하는 지역은 아시아, 아프리카 등 그동안 월드컵 본선과 인연을 맺지 못했던 축구 변방들이다. 아시아의 경우 아시아축구연맹(AFC) 47개 회원국 가운데 단 11개국만 월드컵 본선을 경험했다. 56개 회원국을 보유한 아프리카축구연맹(CAF)에서도 13개 나라만 월드컵 본선에 오른 바 있다.

다시마 고조 일본축구협회장은 ESPN과 인터뷰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난 것을 환영한다”며 “월드컵에 참가할 기회가 더 많은 나라에 돌아가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늘어난 본선 출전권의 혜택이 골고루 돌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의 ‘축구황제’ 마라도나 역시 월드컵 진출국 확대에 찬성했다. 지난 9일 FIFA 어워즈에 참석한 마라도나는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늘리는 것은 모든 나라에 꿈을 주는 것”이라며 “축구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하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반면 그동안 줄곧 본선 진출국 확대를 반대해온 유럽 국가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경기 수 증가로 클럽팀 운영에 지장을 받고, 월드컵 출전 선수들의 부상 우려가 커진다는 것이 그 이유다. 실제로 국가와 상관없이 월드컵 출전 선수 가운데 75%는 유럽 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다.

하비에르 타바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회장은 “이번 결정은 유럽 빅리그에 경제적인 손실을 줄 것이다. 공감대도 없이 내려진 결정”이라며 “이번 사안을 유럽연합이나 스포츠중재재판소 등에 제소하는 방법도 검토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럽 축구 클럽 연합체인 유럽클럽협회(ECA)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ECA는 “월드컵은 32개국 체제가 가장 완벽한 방식”이라며 “FIFA의 이번 결정은 스포츠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닌 전적으로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다.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출전 국가가 48개국으로 확대되면 월드컵 개최방식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워낙 규모가 커져 월드컵을 단독으로 개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처럼 공동개최가 대세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빅터 몬타글리아니 FIFA 부회장 겸 캐나다축구협회장은 현지언론과 인터뷰에서 “공동개최 환경이 만들어진 것 같다”라며 “대회가 커진 만큼 복수의 국가가 개최 기회를 얻었다”고 밝혔다.

현재로선 2026년 월드컵은 대륙별 분산 개최 원칙에 따라 북중미에서 열릴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캐나다, 멕시코가 월드컵을 공동개최하는 방안도 검토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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