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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류현진의 꿈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아니었다. 메이저리그서 당당하게 자신의 기량을 펼치는 것을 목표로 지금까지 노력해왔다. 그리고 이제 류현진은 팀의 에이스가 아니다. 처음 데뷔를 앞두고 있는 신인이다. 이는 곧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한화의 아니 대한민국의 에이스로서는 결코 느껴보지 못했던 생소한 적과 싸워야 함을 의미한다.
메이저리그는 결코 만만한 무대가 아니다. 세계에서 가장 야구 잘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알아서 필요한 만큼만 훈련하고, 승.패 보다는 야구를 즐기는 곳. 우리가 겉으로 보고 느끼게 되는 메이저리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 속엔 치열한 경쟁과 승부의 세계가 숨어 있다. 언제든 다른 선수로 대체될 수 있을 만큼 두터운 선수층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에게 숨 막힐 것 같은 공포를 안겨준다. 메이저리그 선수 대부분이 심리 치료를 받고 있는 이유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류현진 보다 앞서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고 성공했던 아시아권 선배들의 경험담에서도 그 무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야구는 멘털 게임이다. 또한 길고 긴 페넌트레이스에서 늘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야구를 할 수는 없다. 때문에 한번씩은 야구가 안 풀릴 때도 있고, 슬럼프를 겪기도 한다.
이럴 때 만만한 상대(상대 팀 타자 중 몇몇이어도 좋고, 상대팀 전체라면 더 좋다)를 만나면 반전의 기회가 된다.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계기는 슬럼프 탈출의 가장 좋은 약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선수층이 두텁지 못한 한국 프로야구에선 이런 기회를 종종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선 기대하기 어렵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다소 엉성하고 허술해 보일 수 있었도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홈런을 칠 수 있는 한방 능력을 지닌 선수들로 채워져 있다. 힘만 센 것이 아니다. 그들은 매우 짧고 간결한 스윙으로 정교함까지 장착하고 있다.
류현진은 시작부터 에이스였다. 팀은 모두 그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미묘하지만 해결되지 않는 벽이 늘 그의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는 “20년 가까이 용병으로 뛰어 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메이저리그서 최고의 성과를 낸 경험을 갖고 있는 박찬호에게마저 풀 수 없는 장벽이 있었다는 의미다.
‘국민 타자’ 이승엽도 “일본어가 익숙해지며 선수들과 대화엔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일본 사람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농담(우리로 치면 ”조용필은 마지막에 나오는 것“ 정도)으로 웃고 떠들 때 느껴지는 공허함, 슬럼프에 빠졌을 때 그런 기분이 들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쌓이게 된다”고 말했었다.
박찬호는 너무도 큰 스트레스가 어깨를 짖누를 땐 차를 몰고 바닷가를 찾곤 했다고 한다. 그 바닷가는 늘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고 한다.
보이지도 않는 바다 건너 고국의 땅을 상상 속으로만 그리며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곤 했을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의 화려함 보다 먼저 마음속에 그려봐야 하는 화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