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 점입가경 EPL, 3색 레이스

  • 등록 2008-03-25 오후 3:51:58

    수정 2008-03-25 오후 3:52:49

[이데일리 SPN 임성일 객원기자] 대한민국 안방까지도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지난 주말 ‘빅4’들의 맞대결로 인해 2007-08 프리미어리그 우승의 향방은 명확해지고, 복잡해졌다.

맨체스터Utd.(이하 맨유)에게 결정타(0-3패)를 맞았던 리버풀은 사실상 아웃이다. 자칫하다가는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출전권마저 잃게 생겼으니 외려 ‘머지사이드 라이벌’ 에버튼과의 4위 싸움에 집중해야겠다. 리버풀이 중도하차하면서, 그리고 첼시가 뒷심을 발휘하면서 이제 정상권의 다툼은 맨유(23승4무4패)-첼시(20승8무3패)-아스널(19승10무2패) 등 3파전으로 압축이다.

‘현재 선두’ 맨유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한 것은 사실이나 31라운드 현재 5~6점차라면 속단할 수 없겠다. 세 팀이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라 재미를 더하고 있는데 또 흥미로운 것은 이들의 명운을 좌우하는 간판 플레이어들의 활약상도 유사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전성기’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맨유의 올 시즌은 강하고 꾸준하다. 지금껏 총 64득점을 올리는 동안 상대에게 안방을 내준 것은 15번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경기당 2골씩 넣으면서 0.5실점에 그치는 내용이었으니 그들의 고공비행은 당연했던 일이다. 리그 최다득점과 최소실점에 빛나는 완벽한 밸런스이며 특별한 슬럼프 없이 시즌 내내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꾸준히 강한, 근래 최상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EPL 간판 플레이어로 거듭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있다. 벌써 25골이다. 커리어 최다였던 지난 시즌의 17골은 벌써 지나쳤다. 지난 시즌 득점랭킹 1위 디디에 드로그바(20골)의 발자취도 훌쩍 넘었다. 바야흐로 ‘호날두 시대의 도래’라 칭해도 과언이 아닐 활약이다.

마치 맨유가 그러하듯, 호날두 역시 시즌 개시 이래 순풍에 돛 단 행보를 유지하고 있다. 특별한 부상과 부진도 없었으며 기복 없이 한결같으니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자랑이 이만저만 아니다. 생애 첫 득점왕 등극의 가능성은 맨유의 우승 가능성보다 높다. 정말이지 꾸준히 강한 호날두다.

지난 주말 아스널에게 역전승을 거두면서 어느 틈엔가 2위 자리까지 꿰찬 첼시의 뒷심은 놀라울 정도다. 사실 올 시즌은 쉽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무리뉴 감독이 이런저런 잡음 끝에 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어수선한 가운데 바통을 이어받은 아브람 그란트 체제도 크게 신뢰를 주지 못했다.

이런 와중에 초반부터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안드레이 세브첸코 등 주축들의 부상이 끊이지 않았고 가뜩이나 스쿼드에 ‘검은 대륙’ 출신들이 많은데 아프리카네이션스컵으로 인한 차출도 분위기를 무겁게 했다. 요컨대 ‘잡음’이 많았던 시즌이다. 그래서 출발도 더뎠고 안정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제 자리를 잡고 나서는 제대로 탄력이 붙고 있다. 정신을 차린 첼시는 역시 강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동력이 마찬가지로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스트라이커 드로그바다. 무리뉴가 해임되자 공개적으로 불만을 피력했을 만큼 애정이 식었던 드로그바다. 잠시 부상도 있었고 회복되자마자 ‘지금은 클럽보다 조국 코트디부아르의 대륙컵이 우선’이라는 뜻을 천명하며 비행기에 올랐으니 첼시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었다. 올 시즌이 끝나면 다른 클럽으로 옮길 것이라는 이야기도 분분한 실정이다.

하지만 기댈 곳이 마땅치 않은 첼시로서는 오만방자함을 보고도 내칠 수 없었다. 그야말로 계륵이었으나 첼시는, 불가피하게 인내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시즌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기다렸던 보람이 나타나고 있다.

최대 승부처로 여겼던 아스널과의 ‘주말 빅뱅’에서 드로그바는 동점골과 역전골을 모두 터뜨리며 팀에 값진 승리(2-1)를 안겼다. 혹여 패했다면 승점차도 그렇지만 사기가 크게 떨어질 뻔했던 상황이다. 이 승리로 이제 첼시는 우승을 넘볼 수 있는 찬스까지 잡았다. 작금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 킬러라는, 돌아온 드로그바는 역시 강했다.

가장 큰 고민에 빠진 곳은 아스널이다. 시즌 중후반까지 맨유와 엎치락뒤치락 선두경쟁을 펼치면서 4년만의 권좌복귀 야망을 품고 있었는데 갈수록 힘이 떨어지고 있다. 최근 5경기에서 고작 4무1패에 그치고 있으니 급격한 추락이다. 더구나 4번 비겼던 상대가 버밍엄시티(17위), 아스톤 빌라(7위), 위건 애슬래틱(14위), 미들즈브러(12위) 등 중하위권 클럽들이기에 충격은 더 컸다. 더딘 걸음의 일정부분 책임은 엠마누엘 아데바요르가 져야겠다.

‘재발견’이라는 칭찬이 따랐을 만큼 아데바요르의 득점감각은 빛을 발했다. 바르셀로나로 떠난 티에리 앙리를 그리워하지 않아도 될 활약이었고 덕분에 시즌을 앞두고 세인들이 평가절하 했던 아스널은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다시 새옹지마다.

아스널이 4무1패로 기력이 떨어졌을 때 해당 경기 풀타임을 소화했던 아데바요르는 침묵했다. 개인득점 19골에서 제자리를 맴도는 통에 호날두와의 득점왕 경쟁도 격차가 벌어졌고 이젠 페르난도 토레스(20골/리버풀)보다도 아래다. 더 이상 물러나면 아스널도, 아데바요르도 올 시즌은 답이 없다.

꾸준한 맨유, 탄력 받은 첼시, 반전이 필요한 아스널이 펼치는 3색 레이스가 갈수록 흥미를 더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것도 보장할 수 없는 싸움이다. 꾸준히 강한 호날두, 정신 차린 드로그바, 부활을 모색하는 아데바요르. 클럽의 상황과 유사한 ‘에이스’들의 모습이 있기에 더욱 재미있는 프리미어리그의 우승경쟁이다./<베스트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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