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경기 중 일어난 대형사고...드라이버를 구한 이것은?

  • 등록 2020-11-30 오후 12:10:38

    수정 2020-11-30 오후 1:18:18

포뮬러원(F1) 바레인 그랑프리 도중 큰 사고를 당한 로맹 그로장이 구급요원의 부축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머신에서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AP PHOTO
F1 드라이버 로맹 그로장의 탄 머신이 사고를 입은 뒤 화염에 휩싸여있다. 사진=AP PHOTO
사고로 완전히 불에 탄 로맹 그로장의 F1 머신. 사진=AP PHOTO
응원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로맹 그로장. 사진=로맹 그로장 SNS
드라이버 보호를 위해 F1 머신에 설치된 ‘헤일로’. 사진=AFPBBNews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세계 최고의 모터레이싱 경주인 포뮬러원(F1)에서 머신이 두 동강나고 화염에 휩싸이는 큰 사고가 일어났다. 다행히 머신에 타고 있던 드라이버 로맹 그로장(34·프랑스)은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

사고는 30일(한국시간) 바레인 사키르의 인터내셔널 서킷(5.412㎞·57랩)에서 열린 2020 F1 챔피언십 15라운드 ‘바레인 그랑프리’ 결승 레이스에서 일어났다.

19번 그리드에서 출발한 그로장은 첫번째 바퀴 3번 코너를 벗어나 직선 구간으로 진입한 뒤 속도를 올려 추월을 시도했다. 그 순간 그로장의 머신 오른쪽 뒷바퀴가 다닐 크비야트(러시아·알파타우리-혼다)의 머신 왼쪽 앞바퀴에 부딪혔다.

직선 구간으로 접어들면서 시속 220㎞ 속도로 달리던 그로장의 머신은 서킷의 오른쪽 바리케이트에 충돌했다. 머신은 부딪히는 순간 두 동강이 났다. 곧바로 엄청난 폭발과 함께 화염이 뒤덮였다.

영국 BBC는 “차량이 장벽에 부딪히는 충격이 중력 가속도의 53G로 측정됐다”고 전했다. 체중이 71㎏인 그로장이 충돌 순간 무려 3.8톤의 충격을 온몸으로 받은 셈이다.

곧바로 소방차와 구급차가 출동했지만 머신에 붙은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그렇게 30여초가 지났다. 그런데 잠시 후 붙은 머신 안에 있던 그로장이 스스로 빠져나오는 기적같은 장면이 펼쳐졌다.

그로장은 사고 순간 잠시 정신을 잃었지만 응급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탈출에 성공했다. 심지어 응급처치를 받은 뒤 소화기를 들고 소방관과 함께 화재 진압을 돕기까지 했다.

사고가 일어나자 레이스는 경기를 중단하는 레드 플래그(적기)가 내려졌다. 선수들은 모두 피트로 복귀한 뒤 모니터를 통해 사고 수습 상황을 마음 졸이며 지켜봤다. 잠시 후 그로장이 무사히 탈출하는 모습이 나오자 박수를 치며 함께 기뻐했다.

BBC에 따르면 F1 레이스 도중 사고로 머신이 두 동강 난 것은 1991년 모나코 그랑프리 이후 29년 만이다. 또한 머신에 불이 난 것은 1989년 산마리노 그랑프리 이후 31년 만이다.

F1이 1950년 영국 실버스톤에서 첫 레이스를 시작한 이래 레이스 도중 세상을 떠난 드라이버는 총 34명이었다. 1994년 5월 아일톤 세나(브라질)를 끝으로 20년 동안 사망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가 지난 2014년 일본 그랑프리에서 쥘 비앙키(프랑스)의 사고가 일어났다.

당시 비앙키는 코너를 도는 도중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리타이어한 다른 차량을 수습하기 위해 출동한 리커버리 차량(크레인)과 정면 충돌했다. 이로 인해 머리를 크게 다쳐 혼수상태에 빠졌다. 수술대에 올랐지만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이번에 그로장이 당한 사고는 앞선 사망 사고와 비교해도 전혀 작지 않다. 그럼에도 기적적으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다양한 안전장치 덕분이다.

F1은 계속된 사망사고에서 드라이버를 보호하기 위해 여러가지 안전장치를 도입했다. 차량 소재를 더 강화하고 헬멧이나 목 보호장치(Hans), 불이 붙지 않는 내화성 수트 등을 의무화했다.

특히 비앙키의 사고로 심각함을 깨달은 F1은 2018년부터 모든 F1 머신에 ‘헤일로(halo) 헤드-프로텍션 디바이스’(head-protection device)‘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헤일로는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Y자 형태의 롤케이지 장치다. 차량이 뒤집어져도 드라이버의 머리가 노면이나 날아오는 파편 등에 부딪히는 것을 막아준다.

그전에도 드라이버의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다양한 수단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빠른 탈출이 힘들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헤일로가 도입된 이후에도 ‘운전석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F1의 정신을 손상시킨다’, ‘머신이 무거워져 레이스 속도를 줄이고 재미를 반감시킬 것이다’ 등의 반대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헤일로 덕분에 드라이버들이 큰 사고에도 목숨을 건지는 사례가 계속 나오면서 비난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된 그로장도 헤일로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양쪽 손등에 화상을 입은 것을 제외하면 다행히 큰 부상이 없었다.

그로장은 병실에서 자신의 SNS를 통해 “F1에 헤일로를 도입한 것은 가장 위대한 일이다”며 “헤일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이야기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레이스 우승은 이미 시즌 챔피언을 확정지은 루이스 해밀턴(35·영국·메르세데스)에게 돌아갔다. 해밀턴은 2시간 59분 47초 515로 가장 먼저 체커기를 받았다.

해밀턴은 예선 1위에 이어 결승 1위까지 이루면서 ‘폴투윈’을 달성했다. 최근 그랑프리 5연승이자 시즌 11승, 개인 통산 95승째를 기록했다.

이미 이번 시즌 개인 통산 7번째 시즌 챔피언을 확정한 해밀턴은 ‘전설’ 미하엘 슈마허(독일)의 역대 최다 챔피언(7회)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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