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축구 확대경]한숨 돌린 박지성, 그리고 아스널

  • 등록 2008-11-10 오후 5:22:29

    수정 2008-11-10 오후 5:27:08

▲ 박지성

[이데일리 SPN 송지훈 객원기자] 유럽축구를 즐기는 국내 팬들에게 ‘강철 심장’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하 맨유)의 출전 여부는 언제나 중요한 관심사다. 과거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명성을 떨쳤던 차범근 현 수원삼성 감독이 그랬듯, 전성기 시절 미국 메이저리그를 주름잡았던 박찬호가 그랬듯 최고의 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뛴다는 상징성이 부여되어 있는 까닭이다.

적잖은 수의 팬들이 늦은 밤과 이른 새벽 졸린 눈을 비벼가며 맨유의 경기 생중계를 지켜보는 건 한국이 낳은, 그리고 아시아가 주목하는 축구스타 박지성의 활약을 실시간으로 즐기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3경기 연속 결장 후 이뤄진 박지성의 아스널전 출장은 선수 자신뿐만 아니라 우리 팬들에게도 적잖은 즐거움을 선사했다. 기실 최근 들어 박지성이 좀처럼 그라운드를 밟을 기회를 잡지 못했던 건 부상이나 컨디션 저하 등 선수 스스로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컸다. 프리미어리그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상대적 약자와의 경기에서도 좀처럼 강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맨유의 저조한 경기력과 나니,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등 포지션 경쟁자들의 눈에 띄는 상승세를 원인으로 꼽았다.

두 가지 이유 모두 근래 들어 맨유가 선보이는 불안한 행보와 관련이 있다. 프리미어리그 또는 챔피언스리그의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 강자들과의 맞대결 부담을 줄이려면 약자와의 경기에서 승점을 차곡차곡 쌓아올려야 하는데 최근 퍼거슨호의 경우 이 과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에 시달린다. 하수와의 대결에서조차 손쉽게 골을 뽑아내지 못하는 빈곤한 공격력 탓에 박지성에 비해 공격 가담 능력이 좋은 선수들에 우선권을 줄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러 전문가들이 “올 시즌 퍼거슨 감독은 한 수 아래 상대와의 대결에서는 나니를, 강팀과의 경기 또는 승부처에서는 박지성을 중용하는 시스템을 꾸준히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을 내놓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박지성이 아스널전을 통해 지난 9월27일 볼튼전(2-0승) 이후 한 달 반 만에 풀타임을 소화한 건 퍽 반가운 징조다. 좀처럼 선발로 나서지 못한 데 따른 주전 경쟁의 부담을 한결 덜어낸 까닭이다. 비록 팀은 상대에게 1-2로 패했지만 박지성은 특유의 성실한 움직임을 꾸준히 유지하며 필드 곳곳을 누벼 박수갈채를 받았다. 퍼거슨 감독으로 하여금 ‘박지성은 믿을 만한 카드’는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한 활약상이다. 올 시즌 들어 ‘나니는 공격, 박지성은 수비’라는, 도식화된 이미지가 차츰 굳어져가는 건 살짝 아쉬운 부분이지만 붙박이 주전을 찾아보기 힘든 맨유에서 ‘중요한 순간에 제 몫을 해내는 선수’로 인정받게 된 것만 하더라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맨유의 경기를 통해 한숨 돌린 건 치열한 주전경쟁을 벌이고 있는 박지성 뿐만이 아니었다. 승리를 일궈낸 ‘포병대’ 아스널 또한 이 경기의 수혜자로 손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맨유와 마찬가지로 최근 아스널이 선보인 행보 또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대표적인 예가 10월29일 열린 토트넘 핫스퍼와의 리그 10라운드 경기다. 비록 사령탑 교체 이후 상승세를 타고 있다고는 하나 최하위권에 머물던 토트넘과 난타전 끝에 4-4로 비긴 건 리그 수위 첼시 추격을 위해 ‘승점3점’을 간절히 원한 클럽 안팎의 관계자들에겐 적잖이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이후 스토크시티와의 원정경기서 1-2로 패하고 페네르바체와의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홈경기서 0-0으로 비기는 등 불안한 발걸음은 한동안 지속됐다.

구단 일각에서 조심스럽게나마 “이젠 우리도 유망주 육성 못지않게 우승 트로피 탈환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되지 않았느냐”며 사령탑 교체를 암시하는 듯한 주장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 또한 좀처럼 선두로 치고 나서지 못하는 클럽 상황이 주된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듯 고민스런 상태에서 리그 2연패를 달성한 디펜딩챔피언을 제압한 건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기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선수단 사이에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높아졌고, 맨유와 순위를 서로 바꾸며 3위에 올라 첼시와의 승점 차(6점)를 유지했으니 한 번의 경기를 통해 일거양득을 이룬 셈이다.

‘우승권 강호들의 격돌’을 통해 각각 소기의 성과를 거둔 ‘강철심장’과 ‘포병대’는 과연 모처럼 찾아온 긍정적인 상황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을까. 각각 다음 경기인 스토크시티전(박지성)과 아스톤빌라전(아스널)에서 어떤 활약상을 펼쳐보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베스트 일레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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