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스타가 달면 명품이 된다…프로야구와 등번호

  • 등록 2021-03-29 오전 11:00:10

    수정 2021-03-30 오전 8:20:00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이 기사는 이데일리 홈페이지에서 하루 먼저 볼 수 있는 이뉴스플러스 기사입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치고 KBO 리그로 온 추신수(39)가 SSG 랜더스 선수단에 합류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신에게 등번호를 양보한 팀 후배에게 고마움을 표현한 것이었다.

추신수는 등번호 17번을 선뜻 내준 이태양(31)에게 스위스 브랜드 로저 드뷔(Roger Dubuis)의 ‘엑스칼리버 에센셜’ 손목시계를 전달했다. 이 모델의 가격은 무려 2170만원에 이른다.

추신수에게 17번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추신수는 부산고 시절 17번을 달고 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미국 진출 이후에도 이 번호를 놓치지 않았다. 마이너리거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54번, 61번, 16번 등 다양한 등번호를 달았지만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한 번도 17번과 떨어지지 않았다.

이처럼 등번호는 의미없는 숫자에 불과해 보일 수 있지만 선수 개개인에는 중요한 삶의 의미와 가치가 담겨있다.

(그래픽= 문승용 기자)


박찬호 ‘61’, 등번호를 넘어 명품이 되다

등번호라고 다 같은 숫자가 아니다. 스타플레이어들이 달았던 번호는 모든 선수들이 우러러 보는 명품이 된다. 대표적인 번호가 ‘코리안특급’ 박찬호가 달았던 ‘61번’이다. 박찬호는 1994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입단 때부터 2012년 한국 프로야구 한화이글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항상 61번을 달고 뛰었다. ‘CHANHO61’이라는 브랜드가 유행하기도 했다.

원래 박찬호는 아마추어 시절 줄곧 16번을 달았다. 다저스에 입단했을 때도 원했던 번호는 16번이었다. 하지만 그 번호는 당시 론 페로나스키 투수코치가 달고 있었다. 미국에 처음 온 신인 선수가 코치의 등번호를 요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16번의 앞뒤를 바꾼 61번을 선택했다.

61번은 인기있는 번호가 아니었다. 보통 50번 이상은 후보들이 다는 번호로 오래전부터 인식됐다. 하지만 박찬호가 빅리그에서 성공하면서 61번은 에이스의 번호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국내 야구에서 에이스들이 너도나도 ‘박찬호같은 훌륭한 선수가 되고 싶다’며 61번을 다는 것이 유행했다.

다저스에서 61번은 여전히 박찬호를 상징하는 번호로 기억된다. MLB닷컴은 박찬호를 “다저스의 61번을 대표하는 선수”라며 “한국 선수들의 메이저리그 진출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SSG랜더스 추신수가 자신에게 등번호 ‘17번’을 양보한 이태양에게 명품 손목시계를 선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선동열 ‘18번’, 영구결번 됐다가 풀릴 뻔한 사연

‘국보투수’ 선동열의 ‘18번’도 명품 등번호의 대명사다. 선동열은 고교와 대학 시절 등번호 11번을 달고 뛰었다. 1985년 해태타이거즈에 입단했을 때도 11번을 달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 번호는 팀의 간판타자였던 선배 김성한이 달고 있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한 번호가 18번이었다. 사실 그 번호도 다른 주인이 있었지만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이 ‘18번은 에이스 번호’라고 윽박질러(?) 선동열에게 넘어갔다는 후문이 있다.

선동열의 18번은 영구결번 됐다가 돌아올 뻔한 사연도 있다. 해태 구단은 1995년 시즌을 마치고 선동열이 일본 주니치로 이적한 뒤 18번을 영구결번시켰다. 그런데 해태 구단을 인수한 KIA타이거즈가 2002년 이미 영구결번된 18번을 ‘슈퍼루키’ 김진우에게 안겼다. 김진우가 ‘제2의 선동열’로 성장해주길 바라는 구단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팬들로부터 ‘레전드’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구단은 김진우의 배번을 다시 41번으로 바꿨다. 18번은 지금까지 KIA에서 아무도 달지 못하는 번호로 남아있다.

선동열의 일본프로야구 시절 등번호는 20번이었다. 20번은 호시노 센이치 당시 주니치 감독을 비롯해 역대 에이스들이 이어받았던 역사적인 번호였다. 선동열은 1999년 말 은퇴한 뒤 2005년 삼성 감독을 맡았을 때는 90번을 달았다. 당시 ‘왜 90번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선동열 당시 삼성 감독의 대답은 ‘그냥’이었다.

현역 시절 등번호 ‘61번’을 달고 활약했던 ‘코리안특급’ 박찬호. 사진=AFPBBNews


‘36번’ 이승엽 “처음에는 이 번호를 싫어했다”

‘국민타자’ 이승엽하면 떠오르는 번호는 36번이다. 한때 홈런타자 장종훈(35번)을 뛰어넘겠다며 ‘35+1’의 의미로 36번을 택했다는 설이 있었다. 하지만 이승엽은 “그건 아니다”라고 공식 부인했다.

이승엽이 원래 달고 싶었던 번호는 27번이었다. 경북고와 청소년대표 시절 항상 27번을 받았다. 그런데 프로에 와보니 삼성에서 27번은 타자들에게 배정된 번호였다. 원래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다른 번호도 모두 주인이 있다 보니 ‘그냥’ 선택한 번호가 36번이었다.

이승엽은 2017년 은퇴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36번을 싫어했다. 신인 때 어쩔 수 없이 택한 번호였다. 그런데 3년째 정규시즌 최우수선수를 받으면서 ‘36이 내게 맞는 번호’라고 생각했다. 이젠 가장 좋아하는 숫자다. 36이 박힌 내 배트, 장갑, 손목 밴드를 받아간 후배들이 경기 때 사용하는 걸 보고 뭉클할 때도 많았다.”

이승엽은 일본 프로야구 지바 롯데 시절에도 36번을 고수했다. 그런데 2006년 요미우리 이적 후 1년간 33번을 달고 뛴 적도 있다. 33번은 일본 야구 영웅인 나가시마 시게오와 마쓰이 히데키가 달았던 역사적인 번호였다.

이후 한국 프로야구 삼성으로 돌아온 이승엽은 다시 36번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번호는 2017년 화려했던 은퇴식과 함께 삼성 구단의 영구결번이 됐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36번’을 대표하는 대타자 이승엽. 사진=뉴시스


류현진, 미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유명한 ‘99번’

류현진은 특이하게도 한국 프로야구 한화이글스 시절부터 99번을 달았다. 90번대는 국내에서 보통 코칭스태프들의 번호로 인식된다.

류현진의 인천 동산고 시절 등번호는 ‘15번’이었다. 2006년 한화에 입단했을 때도 그의 유니폼에는 ‘15번’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듬해 ‘레전드’ 구대성이 일본과 미국을 거쳐 한화에 복귀하면서 15번을 요구했다. 류현진은 1999년 한화 우승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며 ‘99번’을 선택했다. 99번은 1군 등록 선수가 달 수 있는 가장 높은 번호로 최고 자리에 오르겠다는 의지 또한 담았다.

류현진은 2012년 메이저리그 LA다저스와 계약한 뒤에도 99번을 고수했다. 지난해 MLB닷컴은 ‘역대 메이저리거 등번호별 최고 선수’를 선정했. 류현진은 등번호 99번을 대표하는 스타 역대 3위에 선정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99번은 3년 이상 달고 뛴 선수가 단 7명에 불과할 정도로 인기가 없는 번호다. 하지만 류현진이 이 번호를 달면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특히 류현진의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에게는 의미가 더욱 남다른 번호다.

토론토가 속한 캐나다의 스포츠 영웅이자 아이스하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는 웨인 그레츠키가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다. 그레츠키의 99번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역사상 유일하게 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돼 있다.

아이스하키와 야구는 전혀 다른 종목이지만 캐나다에서는 등번호 99번이 갖는 상징성이 워낙 크다. 토론토 구단 역사상 99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밟은 선수는 류현진이 최초였다. 지난해 류현진의 입단식 당시 에이전트인 스캇 보라스는 “캐나다가 LA에 등번호 99번을 빌려줬고 류현진이 등번호 99번을 다시 캐나다로 갖고 왔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한국 프로야구에 이어 메이저리그에서도 ‘99번’을 고수하는 류현진. 사진=AFPBB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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