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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은구기자] 편안한 인상, 차분한 말투, 젠틀한 분위기. 그러나 요즘 그는 왠지 다가가기 껄끄럽다. 언제고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고함을 내지를 것 같다.
MBC 월화드라마 ‘에덴의 동쪽’에서 신태환 역을 맡고 있는 조민기가 그 주인공이다.
그동안 조민기는 주로 의젓한 이미지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는 남을 짓밟는 것도 서슴지 않는 냉혹한 악역이다.
그러고 보면 조민기는 악역에 참 잘 어울리는 배우라는 생각도 든다. 1997년 드라마 ‘천사의 키스’에서는 아예 악마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얼마나 독하게(?) 연기를 했는지 아직도 그 인상이 깊게 남아있을 정도다.
그 얘기를 꺼내자 조민기는 “당시 목욕탕에서 나를 보더니 진짜 악마인 줄 알고 얼어붙은 아이도 있었다”고 에피소드도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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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역 예찬론 "신태환은 진실된 캐릭터"
“악역이 차라리 편해요. 길이 선명하게 보이니까요.”
조민기는 악역 예찬론을 폈다. 연기의 쉽고 어려움부터 매력까지. 적잖은 연기자들이 악역은 캐릭터가 뚜렷하게 도드라지기 때문에 매력이 있다고 하는데 그 정도가 아니었다.
조민기는 드라마 속 악역이 착한 주인공보다 더 진실성 있는 캐릭터라고 말했다.
“세상에 오른쪽 뺨을 맞았다고 왼 뺨까지 내미는 사람이 진짜 있을까요? 드라마 속의 선한 캐릭터는 실제 있기 힘들죠. 욕망, 욕심이 부각되는 게 악역 캐릭터지만 욕심 없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신태환은 정말 진실된 사람이라고 했다. 기업 이윤만 추구하고 자신의 욕심을 채워가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이라면 당연한 거라는 설명이었다. 다만 방법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래도 신태환은 분명 악역이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조민기의 신태환 연기에 찬사를 보낸다. 과거에는 시청자들이 극중 역할과 배우를 동일시하기도 했지만 요즘 시청자들은 그렇지 않다. 조민기의 연기가 신태환 캐릭터와 제대로 어울리기 때문에 찬사도 쏟아진다고 볼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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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머리 신태환', 회춘 얘기 나올까 스트레스
‘에덴의 동쪽’에서는 철저하게 악역으로 살고 있지만 조민기는 의외로 소심한 면도 드러냈다. 신태환의 헤어스타일에 관한 것이다.
조민기는 지난해 11월부터 흰머리로 연기를 하고 있다. 흰머리는 자신의 의지로 설정한 것. ‘에덴의 동쪽’이 중간에 3년의 세월을 건너뛰면서 흰머리로 바꿨다.
“드라마 속 다른 등장인물들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신태환이라면 3년 사이에도 정도를 걷기보다는 빠르고 편한 길을 선택해 꾸준히 욕심을 채워 갈 거라고 생각했죠. ‘공공의 적’이라는 이미지도 생각했고 그러면서도 드라마 속 가공의 인물이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어요.”
덕분에 촬영장에서는 ‘10년 묵은 바비인형 머리’라는 별명도 얻었다.
“‘에덴의 동쪽’ 시청자 게시판에 ‘신태환 회춘했네’라는 글이 올라오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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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태환 후유증 남기지 않으려 진평왕 선택"
신태환 역을 맡은 뒤 우울증도 겪었다고 했다. 야외 촬영을 할 때는 장소를 이동할 때 장비를 옮겨야 하는 만큼 중간에 시간이 나서 조민기로 돌아올 수 있지만 세트녹화를 할 때는 내내 신태환으로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태환에게는 ‘사랑한다. 용기 내라’ 등의 대사를 해주는 상대 배역도 없었다.
조민기는 “빙의는 아니지만 빙의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에덴의 동쪽’이 끝나기도 전에 신태환과 다른 캐릭터로 차기작을 결정했다. 오는 5월부터 방송될 MBC 월화드라마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이 되는 주인공 덕만공주의 부친인 진평왕 역을 맡기로 한 것.
황실을 바로 세워야 한다는 뜻은 강하지만 미실에게 원천적인 두려움이 있는 데다 자신의 정치가 번번이 미실과 그 측근들에 의해 좌절되자 결단력에 미약함을 내보이는 인물이 진평왕이다.
조민기는 “신태환 역의 후유증을 남기지 않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찾았어요. 그게 배우라는 직업의 장점이죠”라고 설명했다.
어찌 보면 연이어 주인공의 아버지 역할을 맡는 것이 40대의 나이에 너무 빨리 중견 연기자로 접어드는 듯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조민기는 “장치적으로 존재하기만 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분명한 캐릭터가 있는 역할이라면 괜찮아요”라며 “저는 지금의 제 얼굴이 좋아요”라고 말했다.
‘에덴의 동쪽’에서 많은 후배 배우들을 만나고 그들과 대화하며 캐릭터, 드라마의 답을 찾아가는 재미도 느꼈지만 조민기는 새로운 재미를 찾아 또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한대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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