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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규 이데일리문화대상 심사위원] 이문세와 조용필은 우리 가요를 대변하는 대명사다. 수십년의 세월을 견딘 그들의 노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중의 사랑을 받고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세대의 벽을 허문 뮤지션의 현재진행형 행보는 우리 가요계에 중요한 획을 긋고 있다. 더불어 후배 뮤지션들에게도 지표로서의 존재가치와 교과서로서의 지침이 되고도 남는다. 2013년 2분기 콘서트 분야의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이문세와 조용필, 두 거장의 무대가 관객을 달궜다. 공연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블로그 등에는 그날 공연의 후일담이 올라오고 있다.
데뷔 45주년의 조용필은 ‘Bounce(바운스)’ ‘Hello(헬로)’ ‘걷고 싶다’ 등 19집 앨범 수록곡 8곡을 비롯해 자신의 히트곡까지 30여 곡을 부르며 팬들을 오늘과 추억 속으로 재회케 했다. 무빙스테이지를 비롯한 이목이 집중된 특수 장치와 화려한 조명, 완벽한 사운드는 우리 공연 메커니즘의 성장을 한눈에 읽을 수 있게 했다.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마침표를 찍으며 온전히 파고드는 조용필의 가창은 가왕이라는 수식어가 붙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감동의 순간은 찰나가 아니라 2시간여 동안 지속되었다. 지난 4월 10년 만에 발표한 19집 앨범으로 각종 음원차트와 음반차트를 석권하며 ‘황제의 귀환’이 어떤 의미인지 여실히 보여준 조용필은 공연을 통해 다시 한 번 전설을 각인시켰다.
조용필이 우리 대중문화에 침투해 있는 하나의 문화재라는 존재감은 공연을 통해서도 또렷이 각인되었다. 그 존재감의 형언은 단순한 느낌이 아니라 무대에서 날아드는 소리, 심장을 관통하는 추억까지 부여잡는 실체였다. 지금 중장년층에게 각인된 조용필의 실체가 구전을 통해 젊은이들에게는 영웅화 됐다. 그 ‘전설’의 이미지가 젊은 층에게 학습될 만큼 그의 음악은 살아 꿈틀거렸다. 가슴을 울리는 음악은 세월을 견디며 사랑받는다는 진리를 우리 앞에서 증명을 한 셈이다. 좋은 음악은 살아 숨 쉬면서 세월을 버틴다. 10년 만에 내 놓은 음악 역시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섬세하게 트렌드를 따르고 있다. 세월의 속도감을 쉽게 이기지 못하는 중·장년층에 또 다른 음악의 경지는 경외감으로 다가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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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사의 새 기록을 세운 이문세의 저력은 실로 놀라웠다. 주경기장 공연 사상 가장 많은 유료 티켓을 판매한 가수로 등극했다. 기업의 협찬 없이 오직 팬들이 구매한 티켓은 5만 장에 이른다.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공연계도 놀라워한 이문세의 저력이었다. ‘대한민국 이문세’라는 타이틀이 결코 거창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이 같은 그의 음악 족적 때문이다. 세월을 따라 사람의 가슴을 두드리는 그의 노래, 그의 무대는 진화하고 있었다. 650회에 이르는 콘서트의 누적 관객은 100만명에 이른다. 그의 골수팬이 아니더라도 공연 내내 아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광화문 연가’로 시작해 ‘붉은 노을’로, 혹은 ‘옛사랑’으로 시작해 ‘나는 아직 모르잖아요’로 여운을 맺는 그의 공연에는 세월의 숨결이 담겨 있다. 추억을 끄집어내 되씹는 시간의 연속이다. 2시간의 공연은 촌철살인의 무대다. 그때의 기억, 그 순간의 사람, 심지어는 그 찰나의 냄새까지도 떠오르게 한다. 세월을 버티는 노래의 감동은 잔잔한 격정을 불러일으킨다. 이문세의 음악 행보는 대한민국 가요 사에서 결코 누락될 수 없는 역사로 각인된다. 1987년 발표한 4집 앨범은 198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명반으로 꼽힐 만큼 존재감을 갖는다. ‘사랑이 지나가면’ ‘그녀의 웃음소리뿐’ ‘이별이야기’ ‘가을이 오면’ 등 수록곡 전곡이 히트하며 285만장의 판매고를 올린 4집 앨범은 당시 사상 최다 음반 판매 기록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대중문화평론가
강태규 심사위원은…
1969년생으로 서울예술대학 극작과를 졸업했다. 대중음악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문화평론가로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이자 동아방송대학 방송연예과 강단에 서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100여장의 음반기획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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