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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으로 가려질 듯 작은 얼굴 때문일까. 유독 커다란 눈이었다.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땐 특히 깊어졌다. 작품을 대하는 진지함과 애틋한 감정들이 묻어났다. 단단해 보이는 외면 뒤에 숨은 따뜻함이 캐릭터와 닮아 있었다. 지난 14일 종영한 KBS2 드라마 ‘왜그래 풍상씨’(극본 문영남·연출 진형욱)을 마친 배우 전혜빈(36)이었다.
‘왜그래 풍상씨’는 다섯 남매의 가족애 회복기를 담았다. 전혜빈은 셋째 정상 역을 맡았다. 풍상(유준상 분), 진상(오지호 분), 화상(이시영 분), 외상(이창엽 분). 캐릭터 작명(作名)이 말해주듯 정상은 그중 그나마 ‘평범한’ 인물이다. 그만큼 다른 형제들에게 쌀쌀 맞기도 하다. 그동안 전혜빈의 주특기인 세련된 전문직 캐릭터와도 맞닿아 있다.
그의 진가는 서서히 발동됐다. 그동안 남몰래 겪었던 속앓이가 드러나면서 감정의 표현이 깊어졌다. 시청자들도 그와 함께 울었다. 캐릭터에 푹 빠졌던 전혜빈은 “대본을 읽기만 해도, 유준상의 눈만 봐도 눈물이 흘러 난감했다”며 “일부러 딴 생각을 해야 할 대도 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몰입의 즐거움은 컸다. 그는 “캐릭터가 돼 진심으로 연기했다”며 “때문에 여운이 길게 남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루는 감독님께 물어봤어요. ‘왜 저였나요?’ 하고. ‘정상은 전혜빈 아니야?’라고 하셨죠. 그저 감사했어요. 처음엔 너무 어려웠어요. 실제 저와는 너무 다르거든요. 극중 풍상 오빠에게 불륜이 걸려 머리통을 맞는 장면이 있어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조근조근 말을 하는 신인데, 그 장면으로 캐릭터를 파악한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턴 헤매지 않았어요.”
‘연기 선생님’도 있었다. 문영남 작가였다. 대본 집필도, 촬영도 빠르게 진행됐다. 덕분에 대본 리딩도 매회 할 수 있었다. 문 작가는 대본 리딩을 통해 캐릭터에 대한 명쾌한 답을 제시했다. 중심을 잡아준 문 작가가 있어 배우들은 캐릭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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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그래 풍상씨’을 촬영하면서 기분 좋은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절친 서현진과 송현욱 PD의 촬영장 방문이다. tvN 드라마 ‘또 오해영’(2016)의 인연들이다. 고마움에 뭉클해지기도 했다. “문득 인생을 잘 살았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운을 뗀 그는 “어렸을 때 제가 고생을 많이 하지 않았나. ‘이사돈’ 꼬리표 떼는 데 정말 오래 걸렸다”고 웃었다.
씁쓸함이 담긴 미소이기도 했다. 전혜빈은 2002년 걸그룹 러브(LUV)로 연예계 데뷔했다. 러브는 뚜렷한 성과 없이 해체했지만, 전혜빈은 춤이란 장기 덕분에 예능 캐릭터로 살아남았다. 하지만 ‘배우’라는 진짜 꿈은 멀게만 느껴졌다.
슬럼프를 ‘극복’하는 방법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믿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내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남들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저만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가는 느낌이었다”고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뚝 떨어지는 일은 없을 거라고 덧붙였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서른여섯 전혜빈은 씩씩했다. 오지를 탐험하는 SBS ‘정글의 법칙’의 단골 여전사였고, 2017년에는 서현진과 한 달 동안 남미 여행을 다녀왔다. 그의 다음 목적지는 유럽이었다. 바로셀로나를 시작으로 한 달이란 시간을 계획했다. 그렇게 ‘왜그래 풍상씨’을 떠나보낼 생각이었다.
“잘못된 선택을 하기 쉬운 직업군이잖아요. 당장 힘들다고 스스로 망치는 결정을 하지 않았으면 해요. 먼 미래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아이돌 출신처럼 재능은 있지만 기회가 없는 친구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교육 사업을 해보고 싶어요. 이제 꿈이란 씨앗 하나 심은 정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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