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유통 비정상의 정상화]'2016 음악시대'(feat. 직장녀 K씨·32)②

  • 등록 2016-01-13 오전 9:33:06

    수정 2016-01-13 오전 9:33:06

수지 백현 ‘드림’, ‘응팔’ 화면, 아이팟 이미지, 강소라와 빅뱅의 닥터드레 헤드폰 광고 이미지.(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데일리 스타in 강민정 기자] “Dream, 다신 꾸지 못하는 너무 기분 좋은 꿈~”

같은 여자가 들어도 좋은 목소리. 내 이름은 나음악(32세·여성직장인 K씨). 요즘 수지 목소리에 잠을 깬다. 나오자마자 다운 받은 수지·백현의 ‘드림(Dream)’. 알람으로 해놓으니 왠지 기분 좋게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다. 8시 출근. 5시 반 기상. 6시 반엔 집에서 나와야 늦지 않는다. 극기훈련 같은 출근길을 달래주는 건 음악이다. 나만 그럴까. 겨울 바람처럼 차갑게 서로 쌩쌩 지나치지는 우리지만, 우리에게도 우리만의 세상이 있다. 휴대전화에 이어폰 하나 꽂는 일로 행복해지는 시간. 음악의 힘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겨우 놓치지 않은 지하철. 자리에 앉아 멜론 앱을 켠다. 오늘의 인기차트. ‘웬열’, ‘응팔’ OST가 아직도 1위. 위너도 신곡을 냈네. 한번 훑었으니 이젠 비트 앱을 실행시켜볼까. 신곡부터 내가 듣고 싶은 노래까지, 무료로 들을 수 있는 비트. 요즘은 비트가 대세지. 내 주변엔 아직 멜론이나 벅스에서 스트리밍·다운로드 정액권를 사는 친구들이 많던데. 나도 한땐 한 달에 3000원이었나. 매달 자동결제를 걸어뒀었지.

내 폰 뮤직플레이어에 담긴 수 천곡의 노래가 다 소중한 추억이긴 하다. ‘2015년 12월’ 이런 제목으로 즐겨찾기에 정리해둔 리스트를 보면 그때 당시 내 감정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런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좋은데, 비트 앱이 나왔다는 얘길 듣고 자동결제부터 취소했다. 사실 1일1커피에 쓰는 돈이 5000원은 되는데. 그 돈에 비하면 가수들이나 창작자들한테 한달 3000원은 커녕 공짜로 음악 듣기가 미안해지기도 한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대충 업무 세팅은 끝났고. 이제 오늘의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해볼까. 멜론 접속. 원랜 인기차트 전곡을 셔플 재생으로 설정해두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말랑말랑했으니 어쿠스틱 장르가 당긴다. 일하면서 음악 듣는 걸 엄마가 본다고 문뜩 생각하니 어디선가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학생 시절부터 엄마는 시험 공부할 때, 등·하교할 때, 언제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날 보며 역정을 내곤 했다. 공부할 땐 집중안 된다, 길을 다닐 땐 차 사고 난다, 그런 소리. 나만 들으면서 자란 건 아니겠지.

그땐 지금처럼 편하게 노래 듣던 시절도 아니었다. 중학교 시절, 박효신 오빠 박정현 언니 테이프 사겠다고 레코드 가게 앞을 전전하던 때도 있었다. 열여덟, 열 아홉 땐 소니 CD플레이어 하나의 행복이 얼마나 컸는지. 브라운 아이드 소울 2집, 애즈원 3집은 CD가 닳고 닳도록 들었다. 그땐 타이틀곡만 듣고 넘어가지도 않았다. 어떨 땐 타이틀곡 보다 좋은 수록곡에 빠져 친구들이랑 공유하는 재미도 컸는데. 그나마 난 좀 유행에 늦은 편이었다. 그때도 듣고 싶은 노래만 모아 빈 CD에 넣는 ‘굽기’가 유행이었다. “CD좀 구워주라”라면서 노래 제목을 적은 쪽지를 친구에게 건네던 때도 있었지. 그 후로 나의 20대는 MP3가 나오고, 아이팟이 생기고, 아이튠즈가 대중화되던 ‘음원의 혁신’에 발맞춰 풍요로워졌다.

이젠 음악을 고품격으로 즐긴다. 여전히 난 유행에 느리지만 수십 만원의 헤드폰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친구들도 많고 수백 만원에 이르는 튜닝으로 자동차 오디오를 바꾸는 친구들도 있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 걸어다니면서 길에서 보내는 시간을 음악과 함께 하는 우리들의 일상이 그만큼 소중해졌다는 뜻이겠지. 가수와 악기 본연의 소리를 담았다는 플랙 음원이 뜨는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보통 앨범이나 음원보다 몇 배는 비싼 가격이던데.

누구는 700원 음원에 만족하고 누구는 5만원 앨범으로 행복을 찾는 세상이구나. 뭔가 음악 감성에도 계급이 나눠지는 느낌도 지울 순 없네. 반대로, 내 새끼 같은 음악을 누군가에겐 헐값에 팔아야 하고 누군가에겐 제값에 넘긴다고 생각하면 공급자 입장에선 속이 쓰릴 것 같기도 하다. 막상 들어보니 돈 값하더라. 좋은 게 좋은 거구나, 아는 만큼 즐길 수 있으려나보구나 싶다. 이 시점에서, 그렇다면, 아델의 ‘헬로’는 플랙 음원 없나. 검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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