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한국인 럭비선수 이승기 "태극마크 다는게 꿈이죠"(인터뷰)

  • 등록 2024-09-13 오전 11:18:13

    수정 2024-09-13 오전 11:22:23

대한민국 국가대표를 꿈꾸는 재일한국인 럭비선수 이승기. 사진=이석무 기자
OK읏맨 럭비단 소속 이승기. 사진=OK읏맨 럭비단
[이데일리 스타in 이석무 기자] “할아버지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꼭 럭비 국가대표가 되고 싶습니다”

OK읏맨 럭비단 소속의 럭비 선수 이승기(28)는 재일한국인 3세다. 일제 강점기 시절 할아버지가 일본으로 건너온 뒤 이곳에서 뿌리를 내렸다.

고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승기는 고등학교를 오사카에서 나왔다. 럭비가 너무 좋아 럭비 명문인 조선학교 ‘오사카조선고급학교’(이하 오사카조고)를 다니기 위해서였다. 일본을 떠나본 적이 없는 그가 한국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오사카조고 덕분이다. 일본 이름도 한국 이름 그대로 ‘이승기’다.

오사카와 고베는 전철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져 있다. 이승기는 매일 아침 4시 반에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역까지 간 뒤 전철을 두 번 갈아 타고 학교에 갔다. 럭비 때문에 그 생활을 3년이나 버텼다.

“아버지도 럭비 선수였습니다. 아버지 영향을 받아 저도 9살 때부터 자연스럽게 럭비를 시작했죠. 처음에는 무섭고 싫었어요. 몇 번이나 그만두려고 했는데 안되더라고요. 어머니가 ‘럭비하러 가라’고 하시면서 등 두드려주셨는데 그 덕분에 지금까지 이어졌네요”

오사카조고 럭비부 주장을 맡았던 이승기는 도쿄의 호세이 대학을 졸업하고 선수 생활을 사실상 마쳤다. 일본에서 실업팀에 입단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 국적이라는 점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물론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일본에서도 아주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면 국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친동생인 이승신(23)이 대표적 예다. 그 역시 한국 국적이고 오사카조고를 졸업했지만 일본 20세 이하(U-20) 대표팀을 거쳐 2022년부터 일본 성인대표팀에서 활약 중이다. 2023 럭비 월드컵에도 참가했다. 럭비는 본인 국적과 상관없이 그 나라에 5년 이상 거주하면 해당 국가 대표팀으로 뛸 수 있다.

이승기는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해운회사에 일반 사무직으로 입사했다. 가끔 동호인 럭비팀에서 뛰었지만 선수의 꿈은 거의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런데 올해 4월 OK읏맨 럭비단 제의를 받았고 입단을 결심했다. 오사카조고 재학시절 은사였던 오영길(56) OK읏맨 감독과의 인연이 계기가 됐다.

역시 재일동포인 오영길 감독은 오사카조고를 일본 고교 럭비 명문팀으로 이끈 장본인이다. 오영길 감독을 중심으로 재일한국인 선수들이 온갖 설움과 시련을 딛고 전국대회 우승후보로 오르는 감동스토리는 영화 ‘60만번의 트라이’를 통해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처음 제의를 받았을 때 ‘이렇게도 할 수 있나’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설렘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아직 OK읏맨 럭비단에 정식 이적한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면서 대회 때마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출전한다. 지난달 일본 전지훈련 동안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오는 10월 전국체전 참가를 준비 중이다.

“다행히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업무와 별개로 운동하는 것을 허락해주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그런 것을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행히 전 운이 좋은 편입니다. 사장님도 후회없이 럭비해 보라고 응원해 주십니다”

이승기는 K컬처의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우리말을 더 자연스럽게 하기 위해 드라마를 열심히 봤다. 특히 K팝을 너무 좋아한다. 가수 크러시를 좋아해 그의 공연에 직접 가기도 했다. 최근엔 걸그룹 아일릿도 그의 마음 속에 들어왔다. 그는 “시간 날때마다 K팝을 들으면서 힘을 낸다”고 말한 뒤 환하게 웃었다.

185cm 100kg 체격조건을 갖춘 이승기의 포지션은 프롭(Prop)이다. 프롭은 공격과 수비 시 상대와 어깨를 맞대고 힘으로 버티는 역할을 한다. 몸을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공을 따내야 하므로 강한 파워가 요구된다. 그래서 가장 크고, 무겁고, 힘이 센 선수들이 이 역할을 맡는다.

프롭은 ‘기둥’이라는 뜻이다. 이승기는 한국 럭비의 ‘기둥’이 되고 싶은 마음이 크다. 할아버지의 나라를 위해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이나 럭비 월드컵 무대에 나가는 것이 그의 꿈이다.

“럭비는 정말 매력있는 스포츠예요. 럭비하면서 힘들었지만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럭비 덕분에 지금 조국인 한국과도 인연이 닿게 됐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 국가대표로서 럭비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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