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스타트②]‘무한도전’, ‘원스’ ‘거위의 꿈’...지각 작품의 성공 코드

  • 등록 2008-01-30 오후 3:06:33

    수정 2008-01-30 오후 6:29:00

▲ 뒤늦게 빛 본 지각작품들(사진 왼쪽부터 '무한도전','원스','거위의 꿈')



[이데일리 SPN 양승준기자] ‘지각 인생도 있지만 지각 작품도 있다’

젊은 시절 고생 끝에 뒤 늦게 스타덤에 오른 유재석과 전 MBC 아나운서 손석희 등 ‘지각 인생’들이 지금의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듯, 방송이나 영화, 음악 등 문화 콘텐츠 가운데도 초반 부진을 극복하고 뒤늦게 성공한 ‘지각 작품’들이 적지 않다.

그렇다면 연예 산업 전반에 걸쳐 ‘지각 작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지각 작품’이 누린 뒤늦은 영광의 배경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 ‘무한도전’, ‘황금신부’... 캐릭터 구축, 점층되는 갈등구조 속 '뒷심' 탄력  

방송 프로그램 중 지각 작품의 대표작으로는 가장 먼저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꼽을 수 있다. ‘무한도전’의 전신인 ‘강력추천 토요일’의 코너 ‘무모한 도전’은 프로그램 초기 시청률이 5~6%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정도로 시청률 막장을 달렸다.
 
지난 2005년 ‘무모한 도전’ 시절에는 매주 새로운 게스트가 출연해 황소와 줄다리기, 전철과 달리기, 오리배와 유람선 누가 목적지까지 빨리 가나 등 그야말로 몸 개그의 궁극을 보여주었으나 시청자를 사로 잡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다면 비드라마 부문으로는 넘기 힘든 시청률 30%대를 돌파하며 토요일 동시간대를 평정한 ‘무한도전’이 뒤늦게 빛을 본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 뒷심의 원인은 다양한 시도 끝에 자리잡힌 무한도전 여섯 멤버들의 캐릭터에 있다. ‘유반장’(유재석), ‘하찮은 2인자’(박명수), ‘소녀떼를 사랑하는 돌+아이’(노홍철), ‘자신을 사랑하는 상 꼬맹이’(하하), '웃기는 것 빼곤 다 잘하는 어색한' 형돈, '질펀한 엉덩이', ‘철없는 식신’ 정준하는 아이돌 그룹만큼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으로 프로그램에 다양한 맛을 내고 있다. 
 
'무한도전'은 ‘무모한 도전’ 시절의 포크레인과 땅파기 대결 등 거대한 몸 개그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대신, 달력 만들기 등 사소한 도전을 하더라도 무한도전 멤버들의 뒤늦게 찾은 캐릭터를 살려냄으로써 프로그램의 재미를 더해갔다.

SBS 주말 드라마 ‘황금 신부’도 뒤늦게 시청자들로부터 사랑 받은 프로그램 중 하나다. ‘황금 신부’는 지난 해 6월 극중 초반 시청률이 한 자리에 머물 만큼 고전을 면치 못했다. 스타급 배우의 부재와 처음 진주(이영아 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밋밋한 스토리 전개가 부진의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황금 신부’는 시청률 30%에 육박하며 SBS 주말 시청률 효자 프로그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이 인기를 반영하듯 ‘황금신부’는 당초 50부작에서 20회를 더 늘려 올 2월까지 연장 방영이 결정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드라마 ‘황금 신부’의 뒤늦은 인기 요인은 무엇일까. '황금 신부'가 극 중 주인공 진주(이영아 분)와 준우(송창의 분)의 단순한 러브라인에 그치지 않고 회를 거듭해 가면서 부각되는 극 중 주변 캐릭터들의 갈등 구조가 드라마 인기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황금 신부’에는 전 여자친구 지영(최여진 분)에게 매몰찬 배신을 당하고 공황장애에 걸린 준우의 사랑 극복기 이외에도, 세미(한여운 분)와 영수(김희철 분)의 이루어지기 힘든 사랑, 준우와의 과거가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며 갈등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지영(최여진 분) 등이 극 중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진주의 친부(임채무 분) 찾기와 극 중 성일(진주 친부)이 진주의 친부라는 비밀이 밝혀져 그 속의 갈등이 극을 입체적으로 돋우며 시청자들을 사로 잡고 있기도 하다.

◇ 작은 영화 ‘원스’,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인디 영화의 ‘거성’이 되다

영화 ‘원스’는 최근 불고 있는 ‘음악 영화’ 붐에 불을 지핀 작품이었다. 아일랜드 영화 ‘원스’는 존 카니가 감독을 맡고, 글렌 핸사드, 마케타 잉글로바로가 주연을 맡는 등 국내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감독과 배우로 국내 초기 개봉 때만 해도 극장가와 관객들의 별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원스’의 진가는 뒤늦게 나타났다. 지난 해 9월 10개관에서 작게 개봉된 영화 ‘원스’는 개봉 13주차가 되면서 영화가 좋다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20개관으로 확대 상영됐다. 독립영화인 만큼 영화 수입사 측에서도 영화 홍보 마케팅을 소규모로 진행됐지만 오직 관객들의 입소문에 힘입어 독립 영화로는 놀라운 20만 관객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제작비가 1억 4000만 원에 불과한 독립영화로 보면 영화 ‘원스’의 흥행은,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더 많은 물량이 투여되는 기획영화들이 거둔 약 500만 명의 흥행에 버금가는 성공”이다.

영화 ‘원스’의 성공은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지난 10일 미국 박스오피스 집계 사이트 박스오피스모조에 따르면 '원스'는 아일랜드와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입만 총 1407만1659달러(한화 약 130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원스’의 성공에 대해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 ‘원스’가 들려주는 음악과 이국적인 사랑이야기가 폭력과 섹스, 판타지 등으로 대변되던 상투적 소재에 식상해있던 팬들에게 새로운 자극으로 다가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영화 관계자는 “보통 영화는 영화에 출연한 스타의 힘에 의존해 마케팅 활동을 벌이는데 영화 ‘원스’는 관객들이 영화 작품만을 보고 마케팅의 주체가 되어 뒤늦게 흥행 대박을 이루게 했다”며 지각 작품 ‘원스’의 의미를 곱씹기도 했다.

◇ 인순이가 부르는 '거위의 꿈'...가수의 인생이 음악에 녹아 들다

“난, 꿈이 있어요. 그 꿈을 믿어요..”

2007년은 가수 인순이에게 있어 최고의 한 해라 할 수 있다. 가수 데뷔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했음은 물론, 세대를 넘나들며 ‘가수 인순이’란 존재를 많은 청취자들의 뇌리 속에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순이가 가수로서 뒤늦게 전성기를 맞게 해 준 곡은 단연 ‘거위의 꿈’이라 할 수 있다. ‘거위의 꿈’은 후배 가수 김동률과 이적의 프로젝트 그룹 ‘카니발’이 지난 1997년 발표한 곡이지만, 오히려 ‘거위의 꿈’을 리메이크 한 인순이를 원곡 가수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의 반향은 컸다. ‘청출어람’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인순이는 ‘거위의 꿈’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다면 지난 97년 김동률과 이적이 부른 ‘거위의 꿈’보다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 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뒤늦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위의 꿈’ 원곡자이자 가수인 김동률과 이적이 대선배이긴 하지만 가수 인순이 보다 가수 지명도에선 그리 떨어지지도 않는데 말이다.

가요계 관계자는 이 이유를 “ ‘거위의 꿈’이란 곡이 가수 인순이에게 더 맞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순이는 어렸을 적 미 8군에서 태어나 혼혈인으로 사회적 냉대를 온몸으로 받고 자라 온 가수다. 이에 이런 가수 인순이의 인생 스토리와 노래 ‘거위의 꿈’의 가사가 맞물려 김동률-이적이 부른 ‘거위의 꿈’ 보다 더 강렬하게 음악 팬들에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거위의 꿈’의 뒤늦은 대박을 바라보는 원곡자 김동률도 이런 시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김동률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카니발’이 불렀던 ‘거위의 꿈’은 20~30대 취업으로 고민하는 젊은층들에게만 어필한 반면, 인순이는 이 노래를 한 세대가 아닌 전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노래로 승화시켰다”고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을 이야기했다.

같은 노래지만, 누가 부르냐에 따라 그 곡의 생명력이 더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인순이가 부른 ‘거위의 꿈’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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