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맞지 않는 팀은 없다. SK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4년간 내리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흔들림 한번 없없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후반기서 SK가 겪은 위기는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다. 길고 긴 페넌트레이스를 운영하는데 있어 겪을 수 있는 시행 착오, 그리고 이겨낼 수 있는 길을 동시에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올스타 브레이크는 점차 짧아지는 추세다. 이전엔 거의 일주일 정도 휴식기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엔 나흘 정도로 줄었다.
하지만 그 상징성과 의미는 여전하다. 새출발을 뜻하기 때문이다. 남은 경기수가 많지는 않지만 전반기 분위기를 바꾸거나 이어갈 수 있는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다.
SK는 지난해 전반기서 60승28패라는 놀라운 승률을 보였다. 남은 경기서 5할만 해도 정규시즌 우승이 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왔다.
하지만 김성근 감독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여유 있는 운영이 오히려 팀에 장애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처음과 마지막 모두 최선을 다한다'는 그의 철학은 지난해에도 마찬가지였다.
후반기가 시작될 무렵, SK는 상황이 좋지 못했다. 선발 로테이션을 든든하게 지켜주던 글로버와 송은범이 각각 부상과 부진에 빠졌다. 송은범은 불펜으로 전환, 숨통이 트였지만 글로버 공백은 메울 길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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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스타브레이크를 전.후 한 김광현의 등판 일정은 매우 의미하는 바가 크다.
김광현은 7월들어 꼬박 꼬박 5일 로테이션을 지켰다. 단순히 선발 투수가 모자랐기 때문이 아니었다. 후반기 스타트 일정까지 고려한 기용이었다.
포인트는 7월27일 LG전과 8월1일 KIA전이었다. 김 감독은 이 두 경기를 잡기 위해 7월부터 김광현 카드를 빠르게 꺼내들었던 것이다. 두 번 모두 상대 에이스가 등판하는 날이었다. LG선 봉중근이, KIA선 로페즈가 나서는 경기였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한가지 있다. SK가 '여유'를 택했다면 일정은 조정될 수 있었다. 김광현을 상대팀 에이스와 붙이지 않는 운영을 꾀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다.
하나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승수에 여유가 있다고 천천히 돌아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선수단이 흐트러지는 것을 방지하는 차원에서의 결정이기도 했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SK는 두 경기서 내리 패하고 만다. 김광현도 김광현이었지만 타선이 상대 투수를 전혀 공략하지 못했다. SK는 이 두 경기서 모두 0패를 당했다. 봉중근과 로페즈에게 완벽하게 제압당한 것이었다.
LG와 KIA는 전반기서 SK에 철저하게 당했던 팀들이다. 김 감독은 후반기서도 이들을 먼저 제압해 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야 이후 경기서도 완벽을 기할 수 있게 되끼 때문이다.
김정준 코치는 "여러 가지 상황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악재였다. 김광현이 나가는 경기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걸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다. 그만큼 부담을 안고 싸우게 됐다. 너무 완벽하려다보니 오히려 틈이 생긴 것이다. 또 LG나 KIA도 SK를 상대로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각오와 독을 품었음이 느껴졌다. SK는 이기면서 확실한 걸 얻어가는 것이 전략 중 하나다. 하지만 너무 정면으로 부딪힌 셈이 됐다. 결과적으로 김광현을 투입하고도 두 경기 모두 패하며 팀에 위기감이 감돌았다. 로테이션이 그렇게 어긋나면서 고비가 왔다. 돌이켜 보면 좀 더 쉽게 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설명했다. 물론 돌아가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SK가 위기를 맞지 않았을거라 장담할 순 없다. 그만큼 SK의 마운드 사정이 좋지 못했다. 여유를 가지려 했다면 좀 더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2011시즌 SK의 위기는 상대의 강함에 같은 강함으로 맞붙었던 것이 부담이 됐다는 점이다.
위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인정과 정면 돌파였다. 김 감독은 9월14일과 15일 사직 롯데전서 연패를 당한 뒤 박경완 정대현 등 주축 선수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선수들에게 개인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 안에는 "미안하다. 내가 너무 서두른 탓에 너희들에게 부담을 준 것 같다"고 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