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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앤젤레스=이데일리 SPN 한들 통신원] 빅리그 15년차 박찬호가 올시즌 들어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은 노련미입니다. 특히 볼 배합에서 그렇습니다. 시범경기서 볼카운트 투 나싱 같은 변화구 타이밍에서도 과감하게 패스트볼을 가운데로 찔러 넣어 상대 타자를 깜짝 놀래키며 삼진을 솎아내는 모습이 몇 번 있었습니다.
10일(한국시간) 애리조나전서 박찬호가 6회 2사 1,2루서 나와 만루까지 몰리면서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노련함과 깊은 연관이 있었습니다.
박찬호는 선발 구로다가 2사 만루서 에릭 번스에게 2타점 좌전 안타를 맞아 3-4로 뒤집힌 가운데 등판했습니다. 애리조나의 찬스는 2사 1,2루로 계속됐고 타석에는 3번 타자 올랜도 허드슨이 등장했습니다.
이 때 상황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1점만 더 내주면 애리조나로 흐름이 완전히 넘어가는 분위기였습니다. 더욱 허드슨은 박찬호가 까다롭게 생각하는 왼쪽 타자였습니다.
박찬호는 허드슨에게 좀처럼 승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초구 볼 뒤 원원서도 내리 2개의 유인구를 던졌습니다. 볼카운트 원 쓰리.
이제 풀카운트. 박찬호로서도 허드슨의 헛손질에 충분히 승부의 유혹을 느낄만한 순간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박찬호의 선택은 다시 유인구였습니다. 요즘 가장 자신 있어 하는 93마일 패스트볼을 몸쪽 높게 꽂은 것이었습니다. 휘두르면 좋고 안쳐도 손해 볼 것 없다며 던진, 명백한 버리는 공이었습니다. 박찬호의 기대와 달리 허드슨의 방망이는 돌아가지 않아 포볼이 되면서 상황은 2사 만루가 됐습니다.
일견 등판하자마자 박찬호가 제구력이 흔들려 포볼을 내준 것 같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의도된 박찬호의 만루책이었습니다.
왜 그런가요? 후속 4번 타자가 바로 크리스 버크였기 때문입니다. 버크는 원래 4번 타자였던 코너 잭슨이 4회말 구로다에게 몸맞는 볼로 나간 뒤 5회 초부터 1루 대수비로 나온 백업요원이었습니다(버크의 포지션은 2루입니다). 박찬호가 굳이 허드슨과 상대할 이유가 없었던 것은 더 약한 타자, 버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물론 허드슨에게 포볼을 내준 것은 벤치와의 합의가 전제됐을 것입니다).
결국 박찬호는 버크에게 초구 94마일 패스트볼로 헛스윙을 유도한 뒤 87마일 슬라이더로 2루 플라이를 솎아내며 거뜬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2보 전진을 위해 스스로 1보 후퇴를 선택한 박찬호의 노련한 ‘의도적인 만루책’이 빛을 본 장면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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