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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SPN 김용운기자] “머리 위로 훨훨 날아가겠죠. 거북이 비행기 타고...”
2006년 10월 KBS가 주관한 제6회 한국어능력시험을 보던 응시자들은 듣기평가 문제를 풀다가 잠시나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듣기만 해도 박자에 맞춰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거북이의 ‘비행기’가 문제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4월 2일 오전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혼성그룹 거북이의 리더 ‘터틀맨’ 임성훈은 사실 앨범 발매와 동시에 각종 음악 프로그램 정상을 석권하고 대중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톱스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임성훈은 밝고 경쾌한 멜로디와 즐겁게 흥얼거릴 수 있는 가사로 한국적인 랩을 구사하며 가요 팬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거북이는 2001년 12월 1집 앨범 수록곡 ‘사계’의 히트로 가요계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거북이의 ‘사계’는 1980년대 운동권 가요의 고전인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의 ‘사계’를 힙합과 랩으로 재구성한 노래였다.
노찾사의 ‘사계’는 1980년대 가혹한 노동조건에서 사계절을 살아가는 공장노동자들의 일상을 담은 노래로 운동권 가요의 명곡이자 고전으로 불렸던 곡이다. 이를 상업적인 장르로 재해석한 거북이의 ‘사계’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인 시도였고 논란을 빚었다. 운동권 가요의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의미에서였다.
그러나 임성훈은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 자체가 미국에서도 비주류의 장르임을 강조하며 거북이의 ‘사계’가 노찾사의 ‘사계’와 결코 이질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임성훈은 ‘사계’의 중간에 원곡에 없던 “언젠가 펼쳐질 내 꿈을 위해 세상을 향해 힘껏 모두 달려봐”라는 랩으로 ‘사계’를 재해석했고 결국 ‘사계’는 보다 많은 대중들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으로 부활했다.
2004년 11월 발매한 3집 앨범에서도 역시 거북이의 희망적인 가사와 흥겨운 리듬은 계속 됐다. 3집 히트곡 ‘빙고’에서 임성훈은 “거룩한 인생 고귀한 삶을 살며 부끄럼 없는 투명한 마음으로 이내 삶이 끝날 그 마지막 순간에 나 웃어보리라 나 바라는 대로”라며 삶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빙고’의 히트로 바쁜 활동을 이어가던 임성훈은 2005년 4월 응급실로 실려가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직접적인 사인이 된 심근경색이 발병한 것이다. 이후 임성훈의 앞에 놓인 것은 말 그대로 고난의 길이었다. 임성훈은 심근경색으로 두 번이나 수술을 받았고 소속사와의 갈등으로 육체적, 정신적 시련기를 겪은 바 있다.
그 속에서 탄생한 곡이 바로 거북이의 대표곡이자 한국어능력시험에도 출제된 4집 앨범 수록곡 ‘비행기’다. 2006년 7월 출시된 4집 앨범의 타이틀곡 ‘비행기’로 임성훈은 데뷔 후 처음으로 지상파 가요프로그램에서 정상을 차지했다.
임성훈은 ‘비행기’의 탄생과정에 대해 “1차 심근경색 수술 후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계속 그의 귓가에 맴돌았던 멜로디를 곡으로 만들었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의식이 명확하지 않던 순간에 누군가 옆에서 흥얼거리는 듯 했던 멜로디를 듣고 이를 기억하기 위해 애를 쓰다 의식이 돌아왔다는 것.
임성훈은 이후 소속사 문제를 매듭짓고 자신이 직접 차린 부기엔터테인먼트에서 2008년 1월 5집 앨범 ‘오방간다’를 발표하며 가요계로 복귀했다. ‘오방간다’에서도 ‘거북이’ 특유의 낙관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싱랄라’로 거북이는 저력을 과시해 보였다.
그러나 이제 혼성그룹 거북이의 중심이었던 터틀맨 임성훈의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거북이는 십장생에도 포함되는 장수의 상징이지만 임성훈은 만 서른 여덟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
임성훈의 랩과 노래는 30~40대 아저씨들도 노래방에서 따라 부를 만큼 구수했고 편안했으며 어렵지 않았다. 랩과 힙합을 하는 가수들 대부분은 젊은 층에게만 환호를 받는다. 하지만 거북이는 유치원의 운동회나 홍대의 클럽, 아저씨들의 회식자리와 노인대학 장기자랑 같은 자리에서도 사랑을 받았다. 때문에 그의 노래와 그룹 거북이의 존재 의미는 더욱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1970년 9월 3일 태어나 2008년 4월 2일, 개구쟁이 거북이 비행기를 타고 세상 모든 것이 점처럼 보여지는 하늘로 너무나 일찍 떠나간 거북이 ‘터틀맨’ 故 임성훈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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