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기완’은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송중기 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최성은 분)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다. ‘로기완’은 조해진 작가의 소설 ‘로기완을 만났다’가 원작이다. 영화 ‘독전’ 시리즈와 ‘뷰티 인사이드’, ‘아가씨’, ‘럭키’, ‘콜’ 등을 제작한 용필름의 작품이다. ‘수학여행’으로 전주국제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아시아나 국제단편영화제 등에서 작품상을 받은 김희진 감독의 장편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로기완’은 원작 소설의 명성과 함께, 데뷔 16년차의 배우이자 한류스타인 송중기가 타이틀롤을 맡아 연기 변신을 감행한 작품으로 가장 큰 화제를 모았다. 송중기는 탈북자 ‘기완’ 역으로 이북 사투리 연기에 도전했다. 그가 사투리로 연기를 하는 것 자체가 데뷔 이후 처음이었다.
기완은 “살아야 한다”는 어머니(김성령 분)의 유언을 가슴에 품고 삶의 마지막 희망을 찾아 벨기에에 도착한 인물이다. 무사히 비행기만 타면 난민 지위를 인정받아 사람다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기완은 벨기에 땅을 밟자마자 시련에 봉착한다. 기본 절차를 밟고 통보를 받는 데만 수개월인데다, 자신이 난민이 될 자격을 갖춘 사람임을 증명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기 때문. 이름 석자 ‘로기완’으로 산다는 것부터 낯선 땅 벨기에에선 막막한 일이었다. 난민이 되기 전까진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 불법체류자이기에 숙소다운 숙소에서 잠을 청하거나 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요원했다. ‘로기완’의 초반부는 탈북자 기완이 이방인이 돼 벨기에란 낯선 땅에서 겪는 고군분투와 절망들을 비중 있게 담는다. 추운 겨울, 가게의 비좁은 공중 화장실에서 쪽잠을 청하고, 가진 돈이 없어 쓰레기통을 뒤지다 남들이 버린 음식을 먹고 탈이 난 기완의 비참한 모습 등이 먹먹함을 안긴다.
물론 송중기가 무겁고 어두운 캐릭터를 맡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가 지난해 선보인 영화 ‘화란’의 중간 보스 치건 배역도 묵직한 캐릭터였으니 말이다. 다만 ‘로기완’의 기완은 그것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 캐릭터다. ‘화란’의 치건은 살아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에 미련이 없던 퍼석한 인물이었다. 반면 기완은 이대로 죽어도 할 말이 없을 절망과 나락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 발버둥치는 잡초같은 캐릭터다. 송중기는 이 차이를 확연히 포착했고, 기완만의 감정 스펙트럼을 자신의 것으로 자연스레 녹이는 데 성공했다.
마리(최성은 분)가 등장하는 30분 이후부턴 멜로의 색채가 더해진다. 마리 역시 벨기에의 이방인이다. 한국인이지만 벨기에 국가대표 사격선수로 활약했던 마리는 자신이 몰랐던 어머니의 안락사를 알게 된 이후 아버지(조한철 분)와 갈등을 겪으며 비뚤어지는 인물이다. 원작 소설에선 없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기완은 지독한 가난과 세간의 차가운 시선, 추방의 위협에 시달린다. 반면 마리는 충분한 유복한 환경을 갖췄음에도 마약과 범죄에 자신을 노출시켜 스스로를 파괴한다. 두 사람은 악연을 계기로 만났지만 다른 듯 비슷한 서로의 위태로운 처지에 서서히 마음이 간다. 자신들이 ‘어머니’란 존재에 마음 깊이 느끼고 있던 죄책감에 두 사람은 공감했고, 서로의 삶의 이유와 위로가 되어준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감상할 가치가 충분한 작품이다. 사람다운 삶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세상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처한 현실은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생각해 볼 계기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 시리고 험난한 현실에 발붙이며 살아갈 수 있게 곁을 내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더욱 소중해지는 이야기다. 이상희, 김성령, 조한철 등 조연들의 연기도 구멍없이 훌륭하다. 특히 목숨을 팔아서라도 아들의 행복을 바란 애틋한 모정을 표현한 기완의 엄마, ‘옥희’ 역 김성령의 연기변신이 반갑다. 조선족 동료 역 이상희의 실감나는 사투리 연기와 팍팍해도 미워할 수 없는 인간적인 열연이 감동을 더한다.
러닝타임 131분. 넷플릭스 공개. 청소년 관람불가.